심장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5월 30일(화) 16:42 가+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을 위해 일한다. 타인의 몸속에는 갈 수도 뛸 수도 없다. 인간의 한계는 늘 심장이 좌우한다. 예술이나 문학도 심장이 하는 일이다. 심장의 주된 일은 기능의 집과 같은 일이다. 소설가나 시인의 심장은 언어로 존립하는 그 기능이 유달리 발달 되어 있다. 심장은 수단과 목적에 대한 방법을 끓임 없이 노력한다.
심장은 위대함과 허약함을 동시에 꿰뚫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참혹한 비극을 다루거나 아름다워지는 것을 다루는 것도 심장이 도맡아 한다.
조지 오웰은 작가 중에서도 유달리 통찰이 강한 작가로 평가된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작가는 네 가지 동력 중 하나로 ‘역사적 충동’을 든다.
‘사물을 그대로 보고’ ‘느끼고’, ‘진실’을 알아낸다. 그것들은 후세를 위해 보존하려는 욕구로 표현한다. 권일송 시인은 작가는 시대의 현상을 마시는 미증유(未曾有)의 성격이라 말한다. 미증유는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고 본적도 없는 일을 기록하는 자들이다. 권일송 시인이 말하려는 뜻은 이 시대의 작가에게는 미증유 충동, 심장의 희미하여지고 있음을 안타깝게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면에서는 역사학을 전공하는 학자의 일이 아니냐고 하면 더는 입을 닫는 편이 편하다. 역사는 학문으로 흐르기도 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흐른다. 그 마음의 역사를 소설과 시가 아니면 누가 기록할 것인가.
학인의 친구 중에는 전자회사의 송재구 대표가 있다. 송 대표는 작가인 학인을 자랑스러워한다. 시집을 펴낼 때마다 제작비를 아낌없이, 후원한다. 송 대표의 뜻은 인간의 마음이 흐르는 역사를 쓰는 작가 정신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임철우 소설가는 <이별하는 골짜기>를 쓰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그날을 소설로 쓰겠습니다. 목숨을 바치라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치열한 작가 정신의 애절한 단면이 아닌가! 소설가 임철우의 기도는 교황의 기도보다, 사무엘의 신실한 기도보다, 하나님은 진실로 받았을 것이다. 임철우는 1982년 서울에서는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아직도 한낱 풍문처럼 의심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임철우는 그날 이후 억울하고 원통해서 보름 동안 잠을 못 자고 진실의 문턱에서 하나님께 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15년간에 걸린 소설 <봄날>을 쓴다. 6년 후에는 <이별하는 골짜기>를 썼다. 작가의 심장은 옳고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
상처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함이 자책으로 돌아서는 것이 작가다.
세상의 억울한 역사가 작가의 탓인 양 자책한다. 작가의 심장은 작가의 것이지만 타자의 심장에 들어가며 문학으로 역사를 증언한다.
“바람만 살피는 자는 씨 뿌리지 못하고, 구름만 살피는 자는 추수하지 못한다”라고 전도서 11장 4절은 기록한다. 수많은 성직자가 전도서를 지나치고 있다.
‘멈추지 않는 말들은 뜨거운 입김을 내뱉는다/깃발도 소리치고 한 번쯤 죽어봐도 좋을 캄캄한 소리 들이 울고 지나간다/진실은 사칭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성난 말들은 고삐를 놓고 목의 힘줄을 올린다/진리를 갉아먹은 배신의 그들에게 무엇을 기댈 것인가/수정할 수만 있다면 그날의 시간을 몽땅 새집으로 짓고 싶다’ 최창일 시집<시원의 입술>의 중간쯤 나오는, ‘광장을 지나면서’ 시 전문이다.
시인은 광장을 지나면서 시위대를 만난다. 그들의 심장에 들어가는 역사의 증언이 되어본다.
한강 소설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묘지를 찾아가 향을 피우며 ‘그날’의 못다 핀 청춘들의 진실을 담으려 각고(刻苦)하였다. 증언하는 자의 소명의식과 듣는 자의 상상력이 치열하게 어우러지는 간절한 서사를 위해서다.
그 도시의 열흘은 소설가의 심장에서 고통스럽게 되살리는 노력이다. 물방울이 내쏘는 햇빛의 파편에도 눈이 시린 순결한 기록은 순전한 심장의 일이다.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헛된 소문이 아니다.
한강 작가가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묘지 위에 향불을 놓듯이 작가의 순전한 기록은 목숨을 거는 진실의 서사가 되어야 한다.
작가의 심장은 오늘도 흐르는 역사의 심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