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 시끄러운 난장판, ‘겸손’ 조용한 창조적 소수로 지속가능사회 견인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3년 05월 29일(월) 16:43 가+가-

요즈음 우리 사회를 교만이 판치는 사회라고들 한다. 한 마디로 사회정의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 다양한 현실을 접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처럼 보이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필자가 칼럼 제목을 ‘비리’와 ‘청빈’으로 정할까 로 고민 하다가, 원색적인 표현보다는 내면의 세계를 조심스럽게나마 이야기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에서 무촌에 가까운 ‘비리는 교만’으로, ‘청빈은 겸손’으로 바꾸기로 하고 ‘교만’과 ‘겸손’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한다.
오늘 모 일간지에 게재된 기사 중 눈에 띄는 부분이 있어 그 일부를 인용한다. 최근의 일이기도 하고, 우리의 토양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지도층에게나 국민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으로 기대한다.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렸다.
그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대통령 재임 때 월급의 90%를 기부했다. 관저는 노숙자에게, 별장은 시리아 난민 고아들에게 내줬다. 자신은 낡은 농가에서 살면서 소형차를 운전해 출퇴근했다. 옷차림도 노타이에 낡은 통바지였다. 하지만 그의 청빈한 삶은 세계에 큰 울림을 줬다. 타게 엘란데르 전 스웨덴 총리도 23년간 총리를 지내면서 관저 대신 서민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았다. 출퇴근도 부인이 직접 운전하는 차를 이용했다. 그도 20년 넘은 외투를 입고 신발도 구두 밑창을 갈아 신었다. 자신보다 항상 국민을 앞세웠던 그는 스웨덴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이에 비하면 최고 권력자도 아닌 우리 국회의원들, 정부 각료,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누리는 각종 특권은 국민들의 상상을 초월한, 혀를 내두를 정도에 이른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소식들 중 눈살을 찌 뿌리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건에 대한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 소식들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으로 강조되는 것은 깨끗함, 정직, 뇌물수수금지 등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우리의 내면세계다. 최근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 선택된 우월의식이 가져다준 ‘교만함’이 각종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큰 틀에서 보면 ‘교만함’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는 행태를 고발하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필자가 오랫동안 뉴스를 보면서 느낀 점은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를 받기 위해 포토존에 섰을 때의 짧은 인터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다. 그리고 뒤이어서, 야당이면 정치 탄압으로 몰아세우며 당당히 맞서겠다 로, 여당일 경우 충분한 설명으로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겠다 이다. 대변인들을 통해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내용들은 정치적인 수사와, 상대 당 때문이라는 비난 위주의 성명들로 믿음을 주는 것보다는 한 결 같이 시끄럽고, 난장판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선출직 공직자들에 대한 믿음이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를 보면 그들의 말처럼 무죄로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왜 금방 탄로 날 일을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뻔뻔스럽게 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교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많이 일어나고 있는 학교폭력만 하더라도 주로 고위층이나 돈 많은 자녀들이 대부분 가해학생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학교폭력 자체를 정당화시키려고 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2 3차 가해하는 등 교활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는 맞고 오지 말라고 가르치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더욱 못된 것은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만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자신의 부족한 점은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대단하고 훌륭한 존재라고 여기는 마음 상태, 잘난 체하여 뽐내고 버릇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성서는 ‘교만’을 온갖 죄 중에 가장 악한 죄로 규정하여 모든 죄의 머리에 두고 경계하고 있다. 잠언기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교훈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에 윤리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는 성서가 ‘교만’에 대해서 극도의 경계심을 갖도록 교훈하고 있는 데에는 너무 많은 죄들이 파생되기 때문이다. ‘교만’을 일삼는 자들은 대체적으로 권력의 중심부에 있어서 처벌은커녕 그 죄를 지적하는 것조차 어려운 계층들이고, 그 파급력은 나라와 공동체를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겸손함’으로 묵묵히 자기의 소임을 다한 (故)한경직 목사는 한국교회의 청빈한 삶의 모델과도 같다. 대형교회인 영락교회 설립자임에도 은퇴 후 어떤 재산도 남기지 않았다. 1973년 은퇴 후 2000년 4월 19일 별세하기까지 27년을 살아온 우거처(寓居處)에도 휠체어와 앨범 몇 권, 성경이 남겨진 물건의 전부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은 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하여 헌신 봉사한 삶을 살았다.
한국교회의 최고 지도자였지만 권위를 상징하는 주 교좌에서 내려와 가장 낮은 곳을 향했던 김수환 추기경, 그의 삶이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는 이유는 참된 그리스도의 삶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겸손’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신앙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며, 폭발력 있는 능력이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통찰력,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창조적 소수는 ‘겸손’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