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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타당성 면제기준 완화는, 여야의 한통속 포퓰리즘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3년 04월 17일(월) 16:44 가+가-
도로·철도 등 수백억 원의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사회 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법안이 12일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의결하였다. 경제재정소위원회는 SOC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면제 금액 기준을 총 사업비 500억 원(국비 300억 원 이상)에서 1000억 원(국비 500억 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국가재정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하였다. 본회의 의결이 된다면 재정사업의 타당성도 분석하지 않고 국민의 혈세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재정낭비요인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어, 당장 필요치 않는 일에 신경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비타당성조사는 대규모 재정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조사를 통해 재정사업의 신규투자를 우선순위에 입각하여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예산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운영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서 김대중 정부시절인 1999년에 도입된 정책으로 1997년 후반 IMF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경제가 침체되면서, 재정과 공공부문의 효율성, 투명성, 제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1998년 공공사업 효율화 추진단이 구성되었고, 예비타당성 조사 등 공공사업 효율화 종합대책이 마련되었다. 이런 이유로 도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특성상 혈세 낭비여부에 불구하고 선거구내의 기반사업이라 여겨지는 사업들은 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조건 추진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고, 이는 자칫 낭비요인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액수의 많든, 적든 모든 사업들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해 불필요한 사업은 걸러내는 일이 원칙이고, 꼭 필요한 기반사업만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함이 주권재민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예타의 벽이 크게 낮아지게 되면 전국 각지에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 속출할 수 있다는 걱정 섞인 전망이 나온다. 여야가 예타 면제 기준 완화법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한 배경에는 각 지역에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으로 유권자 표를 끌어 오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지 않아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예타 면제 요구가 봇물처럼 밀려들고 있다. 여야가 합의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예타 없이 진행되는 국책사업이 대거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수출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원빈국인데, 올 들어 무역수지적자가 염려스러울 정도로 계속되고 있어 나라의 경제가 탄탄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인구절벽현상은 지방소멸 가속화를 가져오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만약 불요불급한 SOC 사업임에도 표를 의식하여 많은 예산을 투자하여 시설을 하였는데, 수요가 당초 목표보다 낮다면 자칫 흉물로 방치될 수가 있어 철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철거 비용이 만만치 않아 2중으로 예산이 낭비될 수도 있다.
또한 지금 현재의 우리 실정이 세수부족으로 나라의 살림을 꾸려 가는데 허리띠를 졸라 메야하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더욱더 신중을 기해야 하며, 그동안 호황을 누리면서 나라경제를 견인해 왔던 반도체 실적마저 미·중의 무역 갈등으로 인해 불안이 계속될 뿐만 아니라 실적 또한 계속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국제 통화기금(IMF)이 지난주 11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7%에서 1.5%로 낮췄다. 지난해 7월과 10월, 올해 1월에 이어 네 차례 연속 성장률 전망치를 내린 것이다. 반면,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등 선진국그룹 국가들은 대부분 성장률 전망치를 올려 대조를 보였다. 한국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곳은 IMF만이 아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8개 외국계 투자은행의 올해 한국 성장률 평균은 1.1%에 그쳤다. 일부 외국계 은행은 0%대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문제는 저성장을 돌파하기 위한 경기 부양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런 어려운 환경들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지만, 나라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고 표 얻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더욱더 문제라고 여기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위한 다른 법안은 외면하고 예타 면제 기준 완화법부터 통과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나라 곳간이 새지 않도록 관리하는 재정준칙 도입 법은 논의 자체를 미뤘다. 다른 국가 재정법 개정안이 상임위 소위 단계에서 공전을 거듭하는 모양새와는 사뭇 다르다. 장기적 관점에서 꼭 필요한 사업인지, 자칫 국가재정에 구멍만 내는 사업인지 외부의 객관적 평가를 받는 것은 꼭 필요하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무역이 아니면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예전처럼 대대적인 토목공사로 경기부양을 했었던 시절 하고는 결을 달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재정건전성을 확보하여 국제적인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고, 세계 여러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우수한 기업을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키워서 무역 강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타 면제기준 완화는 잘못된 판단이다.
경제를 반석 위에 든든히 세운 후에 검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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