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공동선이 지배하는 사회로 ‘터닝’하자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3년 04월 03일(월) 16:55 가+가-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고, 어느 때보다 넉넉하고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그 어느 때 보다, 타락하고 거짓이 판치고 ‘선’보다는 ‘악’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오는 4월 9일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지 사흘 만에 살아나신 부활주일이다. 성경은 부활에 대해 이렇게 시작한다.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러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러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 메,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라고 증언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성경 66권을 4번째째 묵상하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광대무변한 우주를 생각해 보면, 과학이 이처럼 발달되어 있음에도 손에 잡히는 우주의 비밀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생각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많은 현상들 중 인체의 신비로움은 신이 아니면 어떻게 이토록 신묘막측하게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신학자들의 학설을 빌려 설명해야 할 필요성도, 가장 권위 있는 성경학자나 그 어떤 신학 논리로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성적인 이해는 늘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부활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명의 제자들이, 각자 접하게 되는 당시 현상대로 복음서에 모두 기록하여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사실을 기록하였다고 보인다.
매년 맞이하는 부활절이지만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남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통해 선한 공동체, 지금과는 180도 달라진 정직함이 우리를 주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으로 글을 쓴다.
세계 4대 성인들이 우리 인류에게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보통 4대 성인으로 공자, 석가모니, 소 크라테스, 예수를 든다.
태어난 시기가 모두 BC이다. 활동시기가 예수를 제외하고 BC 5세기 전후이다. 역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시기가 인류 역사상 정신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시기라고 한다. 성서, 불경, 대화록, 논어 등이 베스트셀러이다. 그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이다.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특이한 내용 중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내용은 천지창조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고, 예수탄생에 대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태어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기록한 점이다. 특히 예수의 4 제자들이 모두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점이다.
우리 인생이 수십 년간 살아온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사회에 정직하고 선한 사람으로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건강할 때에,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직시하고 성찰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찰의 핵심은 ‘죽음은 꽉 막힌 벽이 아니라 열린 문으로서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죽음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엿볼 수 있는 기회가 1970년대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세계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하는 현대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소위 ‘비과학적인 영역’이 베일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심폐소생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심장과 호흡이 멎고 동공반사가 소실된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생겼고 이들 중 일부가 자신이 죽어 있던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근사체험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의식은 반드시 뇌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현상인데, 현재는 세계적으로 수천 건 이상의 근사체험 사례들이 축적되어 있고 이는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권력이나 재물, 명예를 탐하던 지상에 머물렀던 시선을 삶의 진정한 의미로 향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가 이생에서 의미 있게 살다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환자의 임종을 많이 지켜본 어느 완화의료전문의는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하기,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기, 작별인사를 잘 남기기.’ 다른 사람에 대한 기여를 통해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도 좋은 죽음의 한 요소이다. 삶의 유한함과 죽음의 예측 불허성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말고 일상의 삶에서 구체화시켜 나가는 것이 좋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 될 것이다.
부활절의 의미를 내 것으로 소화해 내는 일은, 현세와 죽음 후에 까지도, 공동선을 위하여 살았다고 후세 사람들에 의해 회자될 때 일 것이다. 부활절 기념으로 공동선을 위해 우리의 삶을 터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