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제목을 기다린다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3월 21일(화) 16:52 가+가-

시의 제목과 내용이 이해 되지 않는 경우를 만난다. 아침에 만난 석인재(1975~) 시인의 ‘모란’의 시도 그렇다.
‘1. 강둑에 앉아 낚시하다가/ 뭐라도 걸리면/ 우쭐해서/ 식구들에게 자랑을 하며 나눠먹고 자랐는데//물고기를 실컷 잡아 놓고/ 풀어주는 사람이/ 친구 하자고 다가오면//영 거슬린다 낚시를 재미로 하는 것이//2. 수도를 틀어/ 숭어를 씻는데/주둥이를 씻고 있는데// 돈 받으러 온 남자가 수도꼭지를 잠근다//빚은 빚인데// 숭어를 들고 간다’
제목은 ‘모란’인데 시의 건축은 낚시 이야기로 맺는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다. 숭어는 빼어난 물고기(秀魚)를 의미한다. 임금에게 진상한 물고기다.
시의 화자는 여유롭지 못한 처지로 낚시를 하면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읽힌다. “물고기를 실컷 잡아 놓고 풀어주는 사람이 친구 하자고 다가오면 영 거슬린다 낚시를 재미로 하는 것이” “돈 받으러 온 남자가 수도꼭지를 잠근다”라는 장면에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화자는 모란에 관한 이야기는 끝내 하지 않는다. 표현하지 않고 품격의 모란을 품고 있는 화자가 선비답다. 시란 화자의 속내를 움켜쥐고 보여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화자는 모란이라는 제목으로 일상적인 모습의 삶을 조금은 우아(優雅)하게 정리한다.
‘애리조나 마을을 지나다가/폐차장을 만났다/수백 대의 자동차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차주는 사랑하는 애차(愛車)에/조용하고 평안의 안식을 주었다/누구나 결국은 휴식이라는 사실’
최창일 시인의 ‘휴식’ 시 전문이다. 화자는 폐차장의 차를 휴식으로 보았다. 비탈길과 비포장, 도로를 오르내린 자동차는 고단한 여생을 보냈다. 사람으로 치면 육신이 피곤하다. 더는 운행할 힘이 없어 폐차장에 보낸 것이다. 시의 제목은 안식이 들어있다. 비록 멈춰선 차지만 노동의 시간을 뒤로하고 여유를 취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사경(死境/寫經)의 시학이라고도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쇠락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삶과 죽음을 살아있는 곳곳으로 기록한다. 새롭게 거듭날 줄 모르고 조금씩 마모되어가는 부패는 없어지고 늙은 질병으로 표현된다.
시인은 그것을 소생으로 바라보고 ‘마모’와 ‘부패’ ‘질병’의 실체를 하나의 방향성으로 본다. 죽음을 일으키는 것은 신(神)만이 하는 것이지만 시인도 언어 속에서 신의 대현을 한다.
시는 다르게 보기와 자아의 확대다. 상상력의 심화(深化)다. 석양이 지는 풍경이다.
창가에 앉아서 어둠이 내리는 정경을 본다. 정원의 꽃들이 어두워지는 시간에 비명을 지른다. 어둠이 실어서일까. 시인의 눈으로 보는 정경이다. 추억처럼 덤벼오는 한 무리의 어둠이 아름다운 꽃들을 검은 보자기에 싸듯 감추어 버린다.
장면을 시인이 확대하거나 상상력의 심화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확대의 자아다. 다분히 영감을 다스리는 능력의 시간이다. 이러한 장면은 많은 책을 보면서 화자의 시선을 확대 다양화하는 것이다.
달을 이야기하려면 달의 표면으로 스며드는 것밖에 없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달에서 꺼내는 것이다. 수많은 시인이 달을 본다. 여러 시인이 달의 이야기를 하지만 하나같이 다른 시의 건축이다. 그것은 달에 스며든 순간의 상상력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1932~, 이탈리아)는 기호학을 강의하는 교수다.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가 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저서가 있다. 시시한 이야기를 그렇게 진지하거나 실감 나게 묘사할 수 없다. 스톡홀롬에를 여행 중 연어 한 마리를 샀다. “엄청난 크기에 비해서 값이 아주 헐했다. 게다가 비닐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어서 가지고 가는데에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연어는 찬 곳에 보관해야 한다. 호텔에 가져간 연어가 뜻대로 보관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냉장고에 넣었으나 외출 후 다녀오면 탁자 위에 나와 있었다. 프런티어에 묻는다. 컴퓨터에 입력이 되지 않으면 호텔 방의 냉장고는 관리하는 직원에 의해 컴퓨터에 입력된 내용물만 넣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에 입력을 부탁한다. 외출 후 돌아오니 연어는 다시 탁자 위에 놓였다. 프런티어에 묻는다. 대답은 그 시간에 컴퓨터가 전원이 나갔다. 확인하지 못한 직원은 어제의 입력으로 정리를 했다. 이렇게 사사로운 이야기를 움베르토는 흥미 있게 묘사했다. 움베르토는 상당한 시간을 통하여 일기를 썼거나 글쓰기의 습작을 한 것이다. 다르게 보기나, 사실의 묘사는 다양하게 써보기라는 방법밖에 없다. 이 같은 방법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공통된 견해다. 시는 제목을 목놓아 기다린다. 시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