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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3월 07일(화) 16:44 가+가-
그녀는 분노를 잠재우는 작가였다.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는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쇠사슬 소리” 이 한 문장이 박경리 소설가가 서희를 통한 ‘해방을 묘사’한 구절이다.
찬연한 봄이 햇살과 대화 중이다. 무엇이 저리도 진중한지 모르겠다.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징용)피해자 판결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한국 기업들이 낸 기부금으로 피해자들에게 ‘제3자 변제’로 풀어간다는 요지다. 2012년 5월 한국 대법원이 고법판결을 뒤집고 피해자에게 개인 청구권이 있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하였다. 하지만 11년째 그에 관한 해결은 매듭이 나오지 못하고 끌어왔다.
정치의 논리를 여기서 논하는 것은 시도반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런 논지는 정치인이나 법조인에 맞기는 편이 속 편할지 모른다. 이것이 문학의 비애일까?.
오늘의 상황을 박경리 작가는 어떤 문장으로 전개할 것인지 궁금하다. 토지는 26년간 시간 속에 묶어놓고 작가의 소견서는 계속되었다. 200자 원고지 4만 장에 걸치는 방대한 서사다. 작가는 원고지에서 한 번도 분노를 보이지 않았다. 담담하게 묘사한다. 여종의 죽음을 표현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여자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죽었다”
이 문장은 최참판댁 여종인 귀녀의 죽음에 대한 묘사다. 신분제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귀녀다. 몰락한 양반 김평산, 동네 건달 칠성이와 공모해 삼끈으로 서희의 아버지인 최치수를 교살한다. 그리고 최치수의 아이를 가진 것처럼 위장해 최참판댁의 재산을 차지하려 한다. 결국 이계락은 최치수의 어머니인 윤씨부인에게 발각된다. 옥에 갇힌 귀녀는 아이를 낳고 죽고 만다. 마지막 순간, 귀녀는 자신에게 순정을 바쳤던 강포수라는 사내에게 잘못을 뉘우친다. 누구보다도 세상에 한을 품었을 것 같은 이 여인의 삶을 박경리는 “여자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죽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간결함이 더 무섭다.
독자들은 이 문장에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어찌 보면 박경리에겐 분노라는 것이 소멸되었는 지도 모른다. 일제하에서 남편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잃었다. 사위인 김지하 시인의 교도소 뒷바라지를 하였다. 그의 토지 집필의 시간은 극(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행여 박경리 소설가를 저세상에서 만나게 되면 이 장면에 관하여 감정을 묻고 싶다.
2023년 3월 6일, 정부는 강제징용 일본 책임을 덮고 가는 것에 과연 박경리의 생각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700여 명의 등장인물을 통하여 세상을 보는 관점을 말하고 있다. 토지의 등장인물이 많다는 것은 작가의 다양한 시선이다.
작가가 사랑한 주인공 서희는 오만한가 하면 당당하다. 자존심도 강하다. 그러나 나중에 머슴과 결혼하고 만다. 이 같은 결정의 박경리 작가의 심중은 무엇이었을까?.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와 비교하고 싶었을까.
일본 측의 사죄를 표명도 듣지 않고 역사는 성큼성큼 나가는 것에 박경리의 심경은 어디에 둘까. 산책을 나선다. 성북동 천변에 나란히 앉아있는 강제동원 피해지 위안부 동상이 오늘따라 처연(凄然)하다. 역사는 연민이 될 수 없을까. 역사는 등가(等價)의 사랑은 할 줄 모르는 것일까.
문학은 서러움을 아는 것이 존재의 가치인데. 정치는 토지의 강포수가 담벼락에 머리를 처박고 짐승같이 우는 것일까.
북두칠성이 뚜렷하게 나타나서 깜박여도 정치는 무념무상으로 가고 있다.
5월이면 평사리를 가보고 싶다. 섬진강에 생모를 그리며 강물에 꽃다발을 던지고 있는 양현과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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