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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도 슬픔은 들어 있다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1월 17일(화) 16:41 가+가-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슬프다.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 그의 일생이 보여서 슬프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를 읽으면 내 조국의 가슴이 슬프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큰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감에/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김광석이 부른 ‘어느 60대의 노부부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슬픈 노래를 뽑으라면 사람들은 ‘어느 60대의 노부부 이야기’라고 한다. 슬픔의 적은 슬픔이다. 고흐의 슬픔은 자신의 귀를 자르는 형벌이었다.
철학자들은 슬픔이 오는 것에 대하여, 토론한다. 슬픔이 오는 곳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한 것은 ‘슬픔은 머무는 것들에 있다.’는 사실이다. 슬픔은 설렘을 싫어한다.
슬픔은 일견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우리 마음에 파동을 일으켜 물결을 지니게 한다. 슬픔은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말하는 방식이다.
그러한 슬픔 속에는 허기라는 것이 있다. 허기는 ‘안’에 느끼는 것이다. ‘밖’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슬픔에도 격렬한 느낌과 충만이라는 것들이 작동을 한다. 슬픔을 그 안에서 멈추고 눈물을 훔친다면 슬픔 자체로 끝이 난다. 슬픔을 움직이는 자에게 비워지는 충만도 만나게 된다. 슬픔도 적당하게 허기진 예술가의 밥이 된다. ‘동학, 쇼생크, 피가로의 결혼’과 같은 역사적 사건, 신화 소설 영화뿐 아니라 헤겔, 하바머스, 듀이, 롤스를 비롯하여 흄, 밀, 루소, 스피노자, 칸트, 김대중까지 그 사상이 용광로 속에 들어 있다. 그 용광로는 사건 속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용광로처럼 녹여 모두를 위한 시대정신으로 제안을 하였다. 12월의 끄트머리에는 보신각의 종을 울린다. 한 해 동안 내안에서 다양하게 길러진 슬픔과 아픔을 날리자는 의미다. 시대정신을 제안하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추운 날 삼삼오오 젊은이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도 보신각의 종소리에 동참한다.
헤겔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 “최고의 자유는 아름다운 영혼의 부정적 속성, 곧 ‘나만을 위한’ 모든 것을 단념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자유의 적은 나만을 위한 적이다.’ 바꾸어서 말하면 최고의 슬픔은 영혼의 아름다운 부정적 속성이다. 곧 나만을 위할 때 타인에게 슬픔이 된다.
나만을 위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슬픔의 적은 누구일까. 타인의 슬픔에 몰인정한 권력자들이다. 꽃은 일생에 한 번만 피운다. 사람의 생은 꽃과 다르지 않다. 마지막 순간에 온몸으로 개화하고 생을 마감한다. 바로 이 지점이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극점이 된다. 나의 삶의 극점이 소중하면 모두에게 생멸의 경계는 존중이 되어야 한다.
고흐가, 소월이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면 그들의 슬픔은 그들의 것이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은 고흐의 작품을 보면서 그의 슬픈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주 시인이 일본의 차가운 병실에서 슬픔의 뒤안길에 눈을 감는 것은 자신의 잘못일까. 분명한 것은 슬픔에도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나만을 위한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정치의 지향성을 가진 이들이다.
로즈마리는 잎에서 향기가 나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난다. 장미는 가시가 있다. 로즈마리는 가시가 없다. 가시가 없다고, 가시가 있다고 슬픔이 없지 않다. 들꽃은 슬픔이 있고 하우스의 꽃에는 슬픔이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에도 슬픔의 유전인자는 들어 있다.
슬픔은 멈춰질 때 도착한다. 슬픔의 폭력은 나만을 위한 자유다. 경제적, 이기적, 특정인만의 자유가 범람할 때 슬픔은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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