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고려는 엄연히 다른걸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4월 01일(화) 16:04 가+가-

고구려와 고려는 서로 다른 시기에 존재했던 국가다. 왜 느닷없이 고구려와 고려가 칼럼의 논제일까, 의문일 것이다. ‘서정시와 서사시’의 글을 만들면서 이규보 시인이 고려 시대 사람을 고구려로 오기를 했다. 글을 쓰다 보면 머리는 태평양인데 두드리는 손끝의 워드는 한강인 경우가 있다.
언젠가 서울 신문의 칼럼에 향년(享年)을 살아 있는 시인의 나이 앞에 붙인 경우가 있다. 향년은 한평생 살아 누린 나이를 말한다. 죽은 사람의 나이를 이른다. 산 사람에 향년을 붙이는 것은 무례의 실수다. 신문사의 사세에 따라 자그마한 1단 기사도 편집 기자가 네다섯 명이 붙어서 오 탈 자를 가려낸다. 그날도 밤 11시가 넘어서 교정부 기자의 전화였다. 편집국의 목소리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신문이 나오기까지 편집 기자는 밤이 없다. 문제가 되면 언제고 문제를 찾아 나선다. 요즘의 인터넷 신문은 오피니언이 보내준 원고를 그대로 게재하는 것이 다반사다. 인터넷 신문에서 편집 기자를 충분하게 활용할 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고구려와 고려의 문인을 만나보는 것도 흥미롭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주몽에 의해 건국되어 668년 나당 연합군에 멸망 당했다. 고구려가 기원전이니 무궁한 역사다.
고려는 818년에 왕건이 건국하여 1392년 조선에 대체되었다.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광대한 영토를 가졌다. 광활한 영토 면으로만 보면, 꿈같은 시절이었다.
반면, 고려는 한반도 중심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수도는 개경(현재 개성)에 두었다. 고구려는 예맥족과 다양한 종족을 융합하여 발전하였다. 한마디로 글로벌 한 시대였다. 고려는 신라와 백제의 후손들이 주요 주민이었다. 고려는 국호에서 고구려를 계승했으며 이는 고구려의 정신을 잇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고려는 고구려의 문화를 이어받아 온돌, 벽화, 김치 등 전통을 유지하고 동명왕 제사를 지내주고 있었다. 정치에서 고려는 북진 정책을 통해 고구려의 옛 회복을 추구했고, 스스로 고구려의 후계임을 강조했다. 두 나라는 독립적인 국가였지만, 고려는 고구려의 정신과 문화를 계승하려는 의식을 강하게 가졌다.
고려에는 이규보(1168~1241)라는 대표적인 시인이 있다. 약 8000여 수의 시를 남겼다. 그중 2000 여수가 전해 내려온다. 나머지는 전란으로 소멸하고 말았다. 또 다른 정지상 천재 시인으로 서정시를 통해 한 시대의 시적 수준을 끌어 올린 시인이다. 대표작으로 ‘송인(送人, 대동강을 배경으로 한 서정시)’이라는 시가 있다. “대동강은 어느 때나 마를꼬,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물결을 더하네”라는 석별의 정을 그린 시다. 한시(漢詩)에 있어서 인간의 애정은 소중한 것이기에 그 표현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작품은 후대의 시인에게 가르침이 컸다. 또 다른 시인으로 이제현(1287~1367)을 든다. 고려 후기 문신이자 시인으로 원나라의 간섭에도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구김살 없이 창작 활동을 하였다. 대표작으로 ‘고국에 돌아가고파’시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제현은 근대 이전 최장거리 여행자로도 알려진다.
이들은 각기 다른 시대와 특징 속에서 고려 문학의 수준을 높이고 후학 선비에 영향을 미쳤다. 고려에는 최초 승려 시인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도 있었다. 고려의 승려 시인으로 ‘참외밭을 거닐며 가요를 짓다’ 와 같은 시를 남겼다. 초상화로 가장 오래된 안향(安珦)(1234~1306) 시인이 있다. 안향의 초상화가 전해지는 것은 1318년 충숙왕이 학교(향교)를 세운 안향의 공을 인정하여 그를 높이기 위해 왕명으로 형상(形狀)을 그리게 했다. 초상화는 홍주 향교에 봉안했다. 안향의 초상화는 다음의 백과사전에 볼 수 있다.
이렇게 고려에는 천재 시인을 비롯한 빼어난 서정시인이 있었다. 아쉽게도 고구려에는 특정한 대표 시인이 알려지지 않는다. 이는 고구려가 주로 군사적, 정치적 강국으로 성격이 강했음을 말한다. 문학보다는 벽화, 건축, 무예 등의 문화유산이 두드러짐을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고구려 시기의 문학작품은 대부분 구전되거나 기록으로 남지 않아 시인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 다만 고려의 시인 이규보가 고구려의 건국 신화를 바탕으로 서사시 동명왕 편을 창작, 고구려의 정신과 문화를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