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날 비행기’는 무엇을 얘기하려는가?
이창용 논설위원
작성 : 2025년 03월 17일(월) 16:03 가+가-

미국 상공에서 일명 ‘종말의 날 비행기’로 불리는 군용기의 비행 모습이 확인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10일(현지 시간) “전날 오전 미 해군의 ‘종말의 날 비행기’가 미국 중서부 핵 사령부 기지를 선회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라고 보도했다. ‘종말의 날 비행기’는 보잉 707을 개조한 E-6B 머큐리로, 유사시 공중에서 장거리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지휘한다. 미군의 대표적인 핵전쟁용 공중 지휘통제기로, E-4B(나이트 워치)와 함께 ‘종말의 날 비행기’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번 비행의 목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종전을 압박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추측된다.
1980년대 말 이후 미 해군은 E-6B 머큐리 16대를 보유하고 있다. E-6B 머큐리가 핵미사일 발사 명령을 전달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E-6B 머큐리 즉 ‘종말의 날 비행기’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중대한 상황인식과 더불어 인류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잠시나마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강대국들의 상황오판으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핵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인류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에 대해, 과연 인류의 멸망은 핵전쟁으로부터 시작될 것인가? 세계 각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는 얼마만큼이고 위력은 어느 정도 인가 등은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핵무기는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탄과 핵융합 원리의 수소탄으로 분류된다.핵탄이 폭발하면 폭풍(55%), 열(30%), 초기 방사선(15%) 방출과 잔류 방사선(낙진)의 광범위한 오염 유발로 인명살상과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무기다. 미국 ‘오펜하이머’에 의해 최초 개발되었으며, 핵실험 외에 최초 사용된 예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에게 항복받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당시에는 운반수단이 없어 비행기에 실어 운반하였는데, 1945년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8월 6일과 9일, ‘리틀보이’라는 핵탄두 2발을 각각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했다. 그 파괴력은 실로 가공할 만하여, 히로시마에서는 7만여 명이 죽고 13만 명이 부상했으며, 나가사키에서는 2만 명이 사망하고 5만 명이 다쳤으며, 가옥 수십만 채와 철도 교량 등 지상의 모든 것이 파괴되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 원자폭탄 2발로 일본이 항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동안 강대국들은 앞 다퉈 핵무기를 개발하였으며 러시아를 비롯한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과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 북한까지 9개국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이 보유한 핵무기를 만약 사용한다면, 온 인류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도 남는 양을 보듬고 살아가고 있는 격이다.
그런가 하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 재림’에 대해서도 더욱더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깊이 있게 주장하고 있어 그냥 넘기기보다는 깊은 고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손해 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재림사건’은 “믿음”이라는 고도의 신앙적인 용어를 풀어내지 못하면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으리라는 생각인데…. 그렇다면 종말은 ‘핵전쟁’이든 ‘예수재림사건’이든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될까? 두려울 수밖에 없는 묵직한 주제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종말에 현명하게 대비하자.
우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생애 끝이라고 하는 “죽음의 소식”을 거의 매일 매스컴을 통해서, 주변의 카카오톡과 문자 등 각종 전언을 통해서 접하고 있다. 죽음은 개인에 있어서는 삶의 끝, 종말을 의미한다. 만약 누구에게나 한 번은 맞이하게 되는 죽음이 바로 모든 ‘생애의 종말’을 의미한다면, 구태여 선한 삶을 위하여 물질과 시간과 노력을 동원하여 힘들게 마음을 다스려 가는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필자는 최근 모 신문의 연재기사를 읽으면서 팩트나 다름없이 신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면의 세계를 비롯한 삶의 방향을 잡아갈 수 있었다. 바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인 A교수의 기고문이다. 그는 국내외의 의과대학에서 그동안 2000건이 넘는 ‘근사 체험’ 보고서를 접하고 죽음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내렸는데, 인간의 “죽음”은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는 심판하러 오실 “예수 재림”이라는 성서적인 사건과 맞닿아 있어 감탄사를 던지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다만 때와 시기는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성서는 증언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삶이란” 양심이 바탕이 되는 “선한 삶”이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는 결론은 누구나 쉽게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 “양심”의 속성은 부단히 ‘순치’되지 않으면 바른길에서 이탈하기 때문에 창조주를 향해 “각오와 결단과 다짐”으로 선한 생각이 삶의 중심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꾹꾹 눌러 “습관처럼” 몸에 지니게 해 달라는 ‘기도’가 종말의 문제를 영적으로 해결해 가는 길, 참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