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는 불륜일 수 있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3월 11일(화) 16:05 가+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오류를 경험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예상치 못한 버그를 일으킬 때도 있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 결과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순간도 있다. 시험 문제를 풀다가 오답을 적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을 오해하여 관계에 금이 가는 예도 있다.
이처럼 오류는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류는 단순한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발전의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오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문제를 드러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과학에서도 실험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면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페니실린의 발견이다.
알렉산더 플레밍(Sir Alexander Fleming, 1881~1955)은 실험 도중 세균 배양 접시에 곰팡이가 핀 것을 발견했는데, 이를 단순한 실수로 무시하지 않고 분석한 결과, 인류 최초의 항생제를 개발할 수 있었다. 오류로서 인류에 유익한 오류로 꼽힌다. 글을 만들면서도 머리와 손끝의 워드가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나의 사례로 고구려와 고려에서도 그렇다. ‘구’를 넣고 빼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한다. 오류의 언덕에 사는 사람이 책을 펴내는 편집자나 기자들이다.
편집자나 기자는 그놈의 오·탈자, 오류라며 웃기도 한다. 그렇다. 오류에는 선의적인 오류가 있다. 오류를 두려워하는 태도는 발전을 저해하기도 한다. 우리가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숨기려 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오류를 학습의 기회로 받아들이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자산으로 삼는 기업들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시행착오를 통해 혁신을 이루어낸다.
IT 업계에서는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고쳐라(Fail Fast, Fix Fast)”라는 원칙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이는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류를 빨리 발견하고 개선하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창의적인 사고 또한 오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시행착오가 따른다. 예술가, 발명가, 과학자들은 모두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걸작을 탄생시켰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은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1,000번 이상의 실패를 경험했다. 그는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작동하지 않는 1,000가지 방법을 찾아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오류는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배울 중요한 기회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오류란 일부러 만들지 않는 것이 오류다.
의료개혁에서가 사례가 된다. 인구 5천만에서 한해에 2천 명의 정원을 늘린다는 것은 예상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것은 오류의 불륜이다. 그뿐 아니다.
행정부가 기초적인(일상의 상식) 들이 오류로 나타난다면 그 또한 행정의 불륜이다.
이번 검찰의 행정 오류는 업무의 불륜 중에 상 불륜이다. 대통령의 계엄령을 접근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검찰이 행정의 오류를 저지른 것은 국민의 상당수가 이해하지 못한다. 직설하면 상위 1%의 천재들이 모였다는 검찰이다. 그 검찰이 ‘시간’과 ‘날’을 구분하지 못할 리 없다. 뒤집고 뒤집어도 이해가 쉽지 않은 오류다.
에디슨이 저지른 오류와 전혀 다른 현상이다. 분명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큰 오류다.
의도된 오류가 있다면 오류가 아니다. 범죄이며 확신범이다. 교활의 극치다. 우리는 AI 시대 중심으로 들어간다. 오류를 범하기도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오류는 칼이 되고 비수가 된다. 오류의 끝에 앉은 국민의 눈과 귀는 결코 가벼이 보는 것은 바보들의 행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