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나를 파는 것이 옷이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3월 04일(화) 16:03 가+가-

옷은 신분과 권위를 나타낸다. 역사적으로 왕실과 귀족들이 입던 의상은 화려하지만 거추장스럽기까지 복잡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의상이 때때로 신체적인 불편함과 위험을 초래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보듯, 궁중 의상은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특정한 규범을 따르도록 디자인되었다. 착용자에게 신체적·심리적 부담을 줄 수 있었다.
하나의 사례로 조선 왕실의 곤룡포와 대례복은 두꺼운 원단과 많은 장식이 포함되어 있어 무게가 상당했다. 왕과 왕비의 의복은 무거운 금박과 비단이 사용되어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중국 명·청 시대 황제 복식에서 황제의 갑옷이나 예복은 자수와 금사로 장식되어 매우 무거웠다. 장시간 착용 시 피로를 유발하기까지 했다.
서양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드레스는 후프 치마(크리놀린)나 코르셋은 신체를 심하게 조였다. 특히 크리놀린은 화재 위험이 따르는 의상이었다.
코르셋과 한복의 속옷(답호, 속적삼)은 조선 여성들은 여러 겹의 속옷을 입어야 했다. 서양 여성들은 허리를 가늘게 보이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했다. 코르셋은 장기를 압박해 소화 장애를 유발하고, 심하면 갈비뼈 변형을 초래하기도 했다.
긴 소매와 넓은 치마는 조선의 궁중 한복(원삼, 적의)은 매우 긴 소매와 치마로 이루어져 있었다. 계단을 오르거나 이동할 때 불편함을 초래했다.
19세기 서양에서 유행한 크리놀린 치마는 부피가 커서 촛불이나 난로에 쉽게 닿아 화재 위험이 컸다. 실제로 크리놀린 화재로 인해 많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 왕비와 후궁들이 착용한 족두리, 떨잠, 가채는 무거운 금속과 옥으로 제작되었다. 목과 두피에 부담을 주었으며, 심한 경우 목 디스크를 유발할 수도 있었다.
궁중 의상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천을 거듭하며 변화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시대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간소한 한복이 유행했으나,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 점점 더 화려해졌다. 영조·정조 시대에는 효율성을 고려하여 의복의 무게를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조선 말기, 서구 문물이 유입되면서 점차 실용적인 복식으로 변화를 보인다.
16~18세기에 들어서며 화려한 장식과 코르셋이 필수였다. 신체를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스타일이 유행했다.
19세기에는 크리놀린과 버슬 드레스(뒤쪽이 부푼 형태)가 유행했으나, 지나친 불편함으로 인해 점차 실용적인 드레스로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20세기 이후에 들어서며 왕실 의복은 현대적인 스타일로 변하며, 화려함보다 실용성이 강조되었다.
오늘날 궁중 의상은 역사적 가치와 미적 요소로 주목받으며, 전통 행사나 박물관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재현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끌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적인 복식 디자인에서는 과거의 불편함을 줄이고 실용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전통 복식의 미학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문화와 실용성의 문제까지도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한국에서 대통령들의 의상과 구두도 변천이 있었다. 군사 정권 시절, 대통령이 입는 양복의 원단은 특별하게 주문하였다. 대통령이 입은 원단은 대통령만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특별함까지 사라지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각료회의에 타이를 매지 않았다. 그러한 관행은 다른 나라의 대통령 차림으로 번졌다. 다른 나라 각료회의까지 노타이가 보편화가 되었다.
최근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의 백악관 회담이 열렸다. 볼로디미르 젤린스키 대통령은 평상시 입었던 격식 없는 모습으로 회담에 임했다. 백악관은 젤린스키 대통령에 정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백악관의 의전 의견을 무시한 젤린스키는 자신이 평상시 입는 옷으로 나타났다. 국가 간 외교에는 의전, 조율이 따른다. 조율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회담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의상은 국가와 나를 판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