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가 있긴 한가?
이창용 논설위원
작성 : 2024년 12월 16일(월) 16:20 가+가-
우리는 종종 태고의 신비라 할 수 있는 자연환경을 마주할 때가 있다. 화산이 폭발하여 붉은 용암이 흘러내리는 장엄한 광경을 목도하거나, 바다가 융기되어 신비에 싸여있었던 바다를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었던 광대무변한 우주의 일부라도 과학의 힘으로 접할 수 있을 때, 그럴 때면 우리의 자세가 달라진다.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 자신도 모르게 숙연해지면서 깊이 몰입해 들어갔을 때, 오염되어있는 육신과 영혼은 착해지고 작아지고 양심이 있는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정신을 바로하면 오염되어 찌든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오염 된 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지난날들의 삶을 비로소 부끄럽게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져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아 부질없는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숙연해하면서 선한 양심으로 채웠던 생각들이 다 빠져나가고 손에 잡힌 것은 없고 빈손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은 심심하고 왠지 채워지지 않고 톡 쏘는 맛이 없어 대부분 재미없어한다. 양심이 지배하는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 사회의 저변에 뿌리를 내리기가 어렵고 여전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양심 없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너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요즘의 우리 사회를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신 양심도 없고 정의가 실종된 사회라고 너나 할 것 없이 이야기하는 실정이다. 그렇다 특히 정치권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정말 구분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왜 이렇게 까지 변해가야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도통 보통사람의 역량으로는 선과 악을 구분하기 쉽지 않기에 법을 집행하고 있는 사법부에 기대해 왔지만 이 기관마저도 100% 신뢰를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경우도 가끔은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조물주가 사람을 지으면서 ‘양심’이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생각하고 ‘양심’을 이 기회에 살려내는 발상을 해 보자.
백과사전에는 양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다. “선악을 판단하고 선을 명령하며 악을 물리치는 도덕의식이다. 양심의 가책이나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듯이 자기가 행하거나 행하게 되는 일, 특히 나쁜 행위를 비판하고 반성하는 의식을 말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양심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은유에는 ‘내부의 목소리’, ‘내면의 빛’으로 묘사하고 있다. 양심은 국내법 및 국제법의 개념이기도 하며, 세계 전체에 적용되는 것으로 점점 더 인식되고 있으며, 공익을 위한 수많은 주목할 만한 행위의 동기가 되었으며 많은 저명한 문헌 사례의 주제가 되어 왔다고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한다.
다음은 서울대학교 병원 공공진료센터장인 권용진 교수의 칼럼중 일부이다. “어제 오후 비가 내리고 도로는 젖어 있었다.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고 막 도로에 진입해 불과 100여 m를 가서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마주 오던 승용차 운전자가 운전석의 창을 내리고 나를 향해 무어라고 외쳤다. 나는 창을 내리고 소리를 들었다. ‘유류 주입구가 열렸어요’ 나는 감사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신호등 네거리를 지나 적당한 위치에 차를 세웠다. 유류 주입구가 열려 있었다. 아마 그대로 달렸다면 휘발유가 거리에 쏟아지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를 향해 창을 내리고 외치듯 소리쳐 준 익명의 시민이 고마웠다. 사람에게는 선한 양심이 있다. 선한 양심이 나를 움직이고 있다면 건전한 마음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선한 양심이 무디어지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해진다. 최근 발생한 ‘의사의 난’은 과연 선한 양심에서 일어난 일인지 묻게 된다. 일개 평범한 시민도 선한 양심을 작동해 무관한 상대편 차량에 긴급히 위기 정보를 제공해 주었는데,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과연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선택이었을까? 특히 긴급한 환자들의 생명을 돌보는 일을 뒤로하고 이래도 되는 걸까?”
권용진 교수는 ‘전공의 선생님들께’라는 글에서 전공의의 정체성에 대해 말했다. ‘의사는 사람의 고귀한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모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인류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라는 의사윤리 조항에 합당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또 ‘스승에게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예의 없는 행동, 근로자로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행동은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 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법과 양심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지탱되고 유지되어 왔다. 법만으로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법만으로 규제하는 사회는 경직되고 억압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법 이전에 양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법과 더불어 작동해야 건강한 사회가 유지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선한 양심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