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윤석열 12·3 친위 쿠데타’의 교훈
김양용 철학박사
작성 : 2024년 12월 15일(일) 16:41 가+가-
소위 국가 테러의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는 ‘쿠데타’는 정치적 학살과 구성원의 ‘기본권 침탈’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사형’으로 다스릴 만큼 최악의 범죄로 간주 된다. 문제는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이중 권력’의 상태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권력 교체의 과정에서 민중은 철저하게 소외되며, 오히려 최대의 피해자가 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민중은 ‘불의’를 근절하는 주체이자 언제 어디서나 출현하는 ‘불의’에 대항하며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불의’의 평범함이나 일상성이 아니라 ‘다수의 구성원’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항하느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쿠데타’(coup d’État)는 ‘정부에 일격을 가한다’는 의미로 소수 기득권 엘리트들이 기존 권력의 축출이나 자기 권력의 확장, 연장을 위해 합법을 가장한 불법적인 ‘반란’을 일으키는 정변을 가리킨다. 최근 ‘12·3 윤석열 친위 쿠데타’는 대통령의 군수통수권과 행정권력을 ‘민주주의 3권’인 사법권과 입법권마저 확장하려는 권력 망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2차 탄핵이 의결됨으로서 민주시민들은 이제 하나의 산을 넘었다. 이를 두고 국제사회와 언론들은 ‘친위쿠데타’(self-coup)를 위대한 국민이 맨손으로 막아냈다며 총칼과 장갑차를 ‘비폭력 응원봉’ 하나로 무혈혁명을 이뤄낸 대한민국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공화제 실현을 위해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선 발등의 불을 끄는 일과 그 교훈을 되새김으로써 다시는 이런 위기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쿠데타의 완전 진압이라는 사법적 과제와 함께 반민주 독재의 청산, 악의 평범성과 미니파시즘의 자각, 그리고 올바른 민주주의 교육이라는 과제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일이다.
여전히 주권자인 국민과 맞서 싸우겠다는 반민주적 ‘내란 수괴’를 체포하여 법정에 세우는 날까지 ‘탄핵봉’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democracy)는 dêmos(인민)과 krátos(힘)의 합성어 그리스어 dēmokratía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 ‘인민에 의한 지배’ 즉 ‘인민이 강제권을 가진 유일한 주체’라는 ‘주권재민’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번 쿠데타는 헌법에 의해 규정된 민의의 전당 국회의사당과 선관위를 침탈했다는 점에서 그 무도한 행위가 ‘국헌 문란이자 내란 범죄’라는 사실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해졌다. 우리는 지금부터가 ‘헌재의 시간’이 아니라 ‘민중의 시간’이어야 하며, 주권자의 권리 회복에 한 치의 착오가 없도록 ‘탄핵봉’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역사 속에서 반민주적 독재는 언제나 독버섯처럼 자라며, 그때마다 뿌리채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독재(Dictatorship)라는 전제주의는 일인 혹은 소수에게 권력이 독점된 정치적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독재는 왕조의 시대 그림자가 드리워진 근대 파시즘과 맥을 함께 한다. 흔히 ‘군국주의’ 혹은 ‘팟쇼’로 불리는 ‘파시즘’(fascimo)은 각자의 개성과 선택권을 무시하고 동일한 규율, 문화, 가치관에 구성원 모두를 묶어버리는 국가의 전체주의적 권력을 말하며, 이탈리아 뭇솔리니에서 기원한다. 파시즘이 근절되기 어려운 점은 후기 파시즘에서 보이듯 극-반공주의나 극우적 사상과 결합하여 ‘국가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국민 주권을 제약하고, 평등이 국가의 쇠락을 부른다고 호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 일반은 파시즘이 독점자본과 반공의 종교세력, 그리고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보수적 군중과 견고한 카르텔을 유지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3000년간 왕조시대를 살아오다 최근 30여년간 민주사회를 일구게 된 우리는 무엇보다 ‘개돼지 백성의 멍애’가 우리들 가까운 시공간에 깃들어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서처럼 자신의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은 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 악은 언제나 생겨날 수 있음을 상기하고 일명 ‘예스맨’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나 군 조직과 같이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당연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거나 학교, 직장 등에서의 따돌림과 괴롭힘의 문제에도 깃들어있는 소위 ‘미니파시즘’이야말로 언제나 쿠데타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끝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왕정체제를 지지하는 세력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 1884년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도입된 이래 근대 역사의 질곡 속에서 ‘개돼지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왕정 지지 친일파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소위 파워엘리트 즉 군수뇌부와 범무검찰의 관료들, 그리고 정치 지도자와 독점 재벌들이 견고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를 위해 ‘탄핵봉’을 든 2030세대들이 꿈꾸는 건강한 사회, 진정으로 민중이 개돼지로 취급되지 않고, 기본권이 존중될 수 있도록 권력의 전제화를 억제할 공화주의의 실현 방안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교양하고 교육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는 ‘12·3 윤석열 쿠데타’가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민주주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