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종교관이 던지는 질문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10월 13일(화) 16:17 가+가-

톨스토이 종교 사상의 출발점이자 핵심은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자’라는 근본주의적·실천적 도덕관에 있다.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러시아 정교회를 비롯해 세속화된 교회의 형식주의를 철저히 비판했다. 교회가 본래 예수의 순수한 가르침을 수호하기보다는, 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전쟁을 정당화하고 사형제도를 방관하며 권력층의 특권을 보장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제도권 교리를 걷어낸 자리에 톨스토이가 세운 신앙의 기둥은 바로 복음서, 특히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 이르는 ‘산상수훈(Mountain Sermon)’이었다. 톨스토이에게 예수는 예배의 대상인 신의 아들이라기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자 인류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 평화의 선구자였다. 산상수훈의 가르침 중에서도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라는 구절을 신앙의 절대적 계명으로 삼았다. 이는 어떤 형태의 폭력이나 강제력도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며, 오직 비폭력과 사랑만이 악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는 철학으로 발전했다.
톨스토이의 저서 제목으로도 유명한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는 명제는 그의 영성 관을 가장 잘 요약해 준다. 그에게 신은 저 높은 하늘이나 웅장한 성당 건물, 혹은 사제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외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신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숨 쉬는 이성(Reason)과 양심, 그리고 사랑의 본성 그 자체였다. 따라서 구원이란 특정 종교의식을 치르거나 교리를 맹목적으로 믿음으로써 얻어지는 외적 선물이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신성을 자각하고, 욕망과 이기심을 내려놓은 채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이 땅 위에 ‘하느님의 나라’가 구현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유의 확장 속에서 톨스토이는 타 종교와 사상에 대해서도 매우 많이 열린 시각을 가졌다. 교리라는 외피를 벗겨내고 나면,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과 비폭력은 동서양의 수많은 성현이 설파한 진리와 정확히 통한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는 석가모니의 자비, 공자의 仁(인)과 서(曙), 노자의 무위자연, 그리고 인도 고전의 지혜를 깊이 연구하고 존중했다. 톨스토이에게 종교란 사람들을 갈라치기를 하는 담장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하나의 보편적 사랑으로 묶어주는 거대한 다리였다.
이처럼 도덕적 순수성과 실천을 강조한 톨스토이의 신앙관은 20세기 역사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대지주라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농민들과 함께 노동하며 간소한 삶을 실천하려 했던 그의 행동은 세계 수많은 지식인과 대중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특히 그의 비폭력 평화주의는 인도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에게 직결되어 ‘사티아그라하(진리 척결) 운동’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실제로 간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공동체를 설립했을 때 그 이름을 ‘톨스토이 농장’이라 지을 만큼 그를 깊이 존경했으며,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비폭력 저항에 대한 깊은 교유를 나누기도 했다. 또한, 이 흐름은 미국 인권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이어져 세계 인권과 평화운동의 거대한 줄기를 형성했다.
문학적 측면에서도 톨스토이의 후기 종교관은 위대한 열매를 맺었다. 회심 이후 발표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부활’ 등의 작품들은 복잡한 미사여구 대신 명료하고 시의성 넘치는 서사 속에 그가 깨달은 종교적 진리를 담아냈다.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은 타인을 향한 사랑이며, 욕망에 사로잡힌 삶은 결국 한 뼘의 땅으로 귀결된다는 서늘한 통찰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변함없는 울림을 준다.
물론 당대나 후대의 일부 평론가들은 톨스토이의 종교관을 두고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기독교 윤리관에 불과하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현실 정치의 거친 역학 관계나 인간 욕망의 복잡성을 너무 단순화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전쟁과 갈등,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영적 피폐함에 시달리는 modern 사회의 시선으로 볼 때 톨스토이의 목소리는 더욱 청량하게 다가온다.
오늘날 우리가 톨스토이의 종교관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형식에 매이지 않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와 사랑의 실천이다. 신형 무기와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내면의 성전을 가꾸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비폭력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임을 그의 삶과 사상이 증명하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는 그의 나지막한 서원(誓願)은, 시대를 넘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모든 현대인의 영혼을 두드리는 불멸의 경종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