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5·18을 폄훼하는 이진숙 국회 포럼에 묻는다
문재홍 광주대학교 평생교육원인문·교양 교육 강사
작성 : 2026년 09월 13일(일) 16:11 가+가-
역사를 다시 폭력의 현장으로 만들 것인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질문에 대한민국 사회가 답을 찾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수많은 희생자의 죽음과 유가족의 눈물, 진실을 밝히려 했던 시민들의 고통, 군사정권의 탄압을 견뎌낸 민주화운동가들의 희생이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더 이상 어느 정당이나 특정 진영의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국가의 공식적 조사와 사법적 판단을 거쳐 자리 잡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대법원은 1997년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핵심 인사들의 군사반란과 내란 등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그런데 2026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다시 5·18을 ‘재조명’한다는 이름의 포럼이 열렸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은 지난 8월 국회도서관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공개포럼을 공동 주최했다. 이 의원은 5·18이 ‘성역’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유로운 학술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1980년 5월 광주를 ‘소요 사태’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더 ‘재조명’해야 하는가? 5·18 당시 군의 작전 과정이나 시민들의 저항, 희생자 규모, 미국의 역할 등에 관한 구체적인 역사 연구를 하자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역사는 토론의 대상이고 학문은 질문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자료와 조사, 재판을 통해 확인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국가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을 단순한 ‘소요’로 격하하는 것까지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회라는 장소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회는 개인의 사설 토론장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현역 국회의원이 주최하는 행사는 참석자 개인의 주장과는 다른 공적 무게를 갖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른바 ‘북한 개입설’이다. 5·18을 북한군 특수부대가 일으킨 사건이라거나 북한의 조직적인 개입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5·18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주장으로 반복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못했다. 오히려 관련 허위 주장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판단이 이어졌다. 2023년 대법원은 5·18 당시 시민들을 북한 특수군으로 지목한 지만원 씨의 주장을 허위로 판단한 형사사건의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또 2026년 1월에는 5·18을 북한군 개입 사건으로 왜곡한 도서와 관련한 손해배상 책임도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그렇다면 최소한 국회에서 이러한 주장을 다룰 때에는 질문해야 한다. 새로운 증거가 있는가? 기존의 조사 결과를 뒤집을 만한 객관적인 사료가 있는가? 아니면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주장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다시 소환하는 것인가? 역사학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더욱이 5·18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북한 개입설은 단순한 학술적 가설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군의 총격과 폭력 속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들어야 했던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제 국회에서 다시 그 상처를 헤집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 단순히 몇몇 개인의 역사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포럼을 둘러싸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행사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지아 의원은 5·18 왜곡과 희생자 폄훼는 단순한 역사적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것은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자신의 민주주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다.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는 것이 특정 진영의 정치적 특권이어서가 아니다. 군사적 강압으로 헌정질서를 뒤흔든 세력에 맞서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을 요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고 있는 이상, 그 민주공화국이 어떤 희생 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역사적 책무다.
그리고 국회는 무엇보다 역사적 진실 앞에서 신중해야 한다. ‘성역이 없어야 한다’는 말 자체는 옳다. 그러나 성역이 없다는 이유로 확인된 사실까지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역사적 피해자에게 거짓을 강요할 권리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미 밝혀진 역사를 다시 왜곡과 음모론의 법정에 세우지 말자는 것이다.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이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는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그들의 희생을 통해 대한민국은 군사독재를 넘어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역사를 특정 진영의 소유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민주주의 역사로 온전히 기억하는 것이다.광주의 진실을 다시 어둠 속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5·18은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역사다.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