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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그들의 유효기간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9월 01일(화) 16:25 가+가-
만년설(萬年雪)에도 유효기간이 있었다. 영원히 녹지 않고 백색의 위용을 자랑할 것이라 믿었던 네팔 히말라야의 설산들이 최근 잿빛 토사와 성난 물길이 되어 산 아랫마을들을 삼켜버렸다. 천년, 만년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킬 줄 알았던 거대한 빙벽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전례 없는 대홍수가 들이닥친 풍경은 우리에게 서늘한 깨달음을 준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자연이든 사람이든 무릇 세상 만물에는 각자에게 허락된 ‘유효기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히말라야의 빙하는 단순한 얼음 덩어리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겹겹이 쌓인 눈이 제 무게를 견디며 만들어낸 시간의 결정체이자, 그 자체로 고요함과 엄숙함을 상징하는 거대한 질서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라는 불청객과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기후 위기는 그 공고했던 빙벽의 시효를 사정없이 단축했다. 녹아내린 빙하호가 터지며 발생한 네팔의 홍수는, 제 수명을 다했음에도 버티고 서 있던 빙벽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세상에 어떠한 비극과 혼란을 가져오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극적 신호다.
이 비극적인 자연의 조응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우리 정치 현실의 씁쓸한 풍경이다. 이미 정치적·사회적 시효가 만료되어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났어야 할 이름들, 바로 이명박과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연이은 언론 노출과 정치적 기지개다. 그들이 누구인가. 한 사람은 국가 권력을 사적 이익의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혐의와 비리로 사법적 심판을 받았고, 또 한 사람은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이라는 국민적 심판을 받으며 비참하게 퇴장했던 인물들이다.
사면과 복권이라는 법적 절차가 그들의 형사적 죄책을 면해주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치가 국민에게 선사해야 할 시대적 소명과 도덕적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의 정치적 시효는 이미 오래전에 소멸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봉하마을을 찾거나,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열고, 특정 정치 세력의 후원자나 상징을 자처하며 다시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이 서 있던 빙판이 이미 다 녹아내려 무너졌음에도, 여전히 자신들이 만년설 위에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기이한 퇴행이다.
모든 만물에는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 시간이 있고, 물러나야 하는 적절한 때가 있다. 이를 외면하고 제 자리를 고집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재앙’이다. 히말라야의 빙벽이 제 수명을 다해 무너져 내릴 때 거친 토사 공해를 일으키듯, 시효를 모르고 불쑥 나타나는 정치적 유물들은 우리 사회에 극단적인 진영 갈등과 소모적인 이념 논쟁이라는 먼지를 다시 일으키고 있다. 과거의 실패와 상처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회적 에너지가, 시효 지난 인물들의 존재감 확인과 명예 회복이라는 사적인 욕망 때문에 다시 과거로 역류하고 있다.
자연의 빙벽이 무너지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 초래한 참사이지만, 정치적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인물들이 다시 활개 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역사의식이 오염되었음을 뜻한다. 권력을 가졌던 자들이 자신의 유효기간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무감각함은 비극이다. 자신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유통기한을 가졌는지 돌아보지 않는 태도는, 무너져 내리면서 주변을 파괴하는 네팔의 성난 빙하 폭포와 다른 바 없다.
네팔의 설산을 삼킨 홍수는 단순히 멀리 있는 이국땅의 자연재해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제자리를 벗어난 만물이, 시효를 다한 존재들이 세상을 향해 보내는 엄중한 경고다. 영원할 것 같던 히말라야의 빙벽조차 때가 되면 녹아내리고 사라져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하물며 권력과 정치는 어떠하겠는가.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조용히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는 절제야말로, 한때 국가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최소한의 품격이다.
시효를 잊은 자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히말라야의 잿빛 물길을 본다. 영원한 것은 없다. 때를 알고 물러나는 것, 제 수명을 다한 것은 겸허히 사라져 주는 것, 그것만이 거대한 대지의 질서를 유지하고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터전을 내어주는 유일한 길이다. 오늘 네팔의 빙벽이 흘리는 눈물과 시효를 잊은 정치가 주는 씁쓸함은, 결국 자신의 유효기간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오만이 부른 같은 비극의 다른 얼굴로 남아 있다.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카터가 집짓기 봉사로 살다가 떠나듯 봉사의 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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