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총선, 참신한 ‘새사람’으로 선출하여 시대를 주도하자
이창용 논설위원
작성 : 2026년 08월 31일(월) 16:11 가+가-

여기서 새사람은 우리 사회를 갈라치기 하지 않은 사람, 화해와 용서의 덕목을 가진 사람,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 등 신선한 DNA를 몸에 지닌 사람을 일반적으로 말한다. 지난주에 “분열”이 고착화되면 나라가 위험하다고 경고성 메시지를 게재하였다. 나라를 망치게 하는 악한 행실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내부 분열”을 정치의 기술로 교묘하게 포장하여 국민을 기만하는 작태가 여기저기서 노정되어 사회를 어지럽히고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퇴출시켜야 함을 호소하였다. 필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애국자가 된 것 같다. 나라의 미래에 대해 세심한 살핌이 일상화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의 흥망성쇠에 대한 역사의 교훈을 살펴보면서 정치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나라의 장래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솔직히 역사가 던지는 교훈에서 체득한 지식으로 현재 우리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는 후한 점수를 결코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인 “화합과 용서와 배려”는 아예 찾아볼 수 없고 일상이 되어버린 분열의 획책과, 갈라 치기, 언어폭력이 만연되어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대 전환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리한 방법을 도입하지 않으면 결코 우리가 기대하는 정치행태는 구현되지 않는다. 이것이 관철되었다고 해도 정치의 내용이 개선되리라는 믿음은 크지 않다. 제도권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 보는 것이 시대가 주는 소명이다. 1차로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새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자는 도전장을 우리 국민에게 던져 보는 것이다. “앞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진실로 봉사하며 건전한 정치를 실천할 수 있는 일꾼을 선택하자.”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이 길만이 새 시대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으며, 다음 세대에 넘겨줄 수 있다.
그레샴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은 금본위제 하에서 제시된 경제학 이론 중 하나로, 화폐의 액면 가치와 실질적 가치에 괴리가 생길 경우에 실질적 가치가 높은 통화가 시장에서 축출되고 실질적 가치가 낮은 화폐가 통용된다는 법칙이다. 흔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단문으로 요약되는 이 법칙은 영국의 상인이자 금융업자 토마스 그레샴이 1558년 즉위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졌으며, 기록에 의하면 그가 한 말은 “좋은 돈과 나쁜 돈은 같이 둘 수 없다(good and bad coin cannot circulate together).”에 더 가까웠다고 한다. 이 이론은 약 300년 뒤에 스코틀랜드 경제학자 헨리 더닝 매클라우드(Henry Dunning Macleod, 1821-1902)에 의해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으로 명명되었다.
서로 대등한 액면 가치를 갖는 재화 A와 B가 있다고 하자. A는 순수 금화이고 B는 합금으로 된 저질 주화라고 한다면, B의 소재 가치는 A보다 훨씬 낮고, 당연히 B의 생산 원가도 A보다도 훨씬 저렴하다. 그러면 사람들은 남에게 지불할 때는 B를 이용하고 실질적인 가치가 높은 A는 자기가 보관하려고 할 것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장에서 양화인 A는 사라져 가고 악화인 B만 통용된다.
이 법칙을 오늘날 치러지는 선거나 정치에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사람 중에도 지도자의 덕목을 갖춘 훌륭한 재목들이 많다고 하는 것에 이론이 없을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자.”라는 도전적인 호소 앞에서 우리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선택” 하는 지혜를 마다해서는 안 된다.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내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정치의 허상을 쫓아가는 정치인들과 우리에게 내면의 성찰을 일깨워 주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 트로이 전쟁의 승리 뒤에 가려진 민간인 학살과 약탈 등 폭력의 참혹함을 고발하며, ‘명분 없는 정복과 영웅주의’의 헛됨을 일깨워 준다. 또한 ‘인간의 이성과 의지로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거대한 ‘운명과 삶의 흐름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이 시대의 노 철학자이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나라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분열되고 ‘용서와 화해’가 없는 교만한 사회에 대해 창조주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반성하고 돌아설 때에만 나라가 회복될 수 있다는 간절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역과 가족, 형제자매가 나누어지고, 친구가 나누어지고, 교회가 나누어지는 등 분열 양상은 극에 달해 있다. 봉사보다는 권력욕에 더 가까운 우리네 현실 정치인들과 무관심한 국민들에게 노 철학자가 던지는 교훈을 받아들이기를 권면한다. 참신한 “새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여 일을 맡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