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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닮은 선비, 별밭 최은하 시인을 기리며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8월 18일(화) 16:14 가+가-
어느덧 ‘별밭’ 최은하 시인이 땅 위의 인연을 털어내고 저 높은 별자리로 올라간 지 성큼 3주년(2023년 8월 19일)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선생이 가신 성하의 중심, 유난히 햇볕이 난무하였다. 한국현대 시인협회와 한국기독교 문인협회에서 공 동장으로 거행된 한양대 식장을 가득 메웠다.
선생은 별이 되기 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화를 자주 했다. 스님의 선종 이야기를 유독 자주 꺼내곤 하였다. 고승이 스스로 말한 날짜에 세상, 눈을 감는 것은 곧 곡기를 조절하여 자신의 마지막 시각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 하였다. 당시에는 그저 선가(禪家)의 우의를 전하는 담담한 이야기로 지나쳤으나, 선생의 부상과 임종의 순간을 돌이켜보면 그것이 결코 우연한 흥미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리에 중상을 입고 병실에 입원했을 때, 선생은 외부인의 문병을 철저히 사양하였다. 오직 아우인 최규창 시인만을 방문하도록 했을 뿐, 그 어떤 문인이나 지인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는 사람을 가리는 차원이 아니었다. 한평생 선비로서 지켜온 당당한 자존심이자,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가장 단정하게 가다듬고자 한 정결한 고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은 별을 향해 떠났다. 그 초연함 속에서 스님들의 곡기 조절을 말하던 선생의 음성이 겹쳐진다. 선생은 이미 자신의 마지막 길을 예감하고, 수도승처럼 초연하게 스스로 시간을 조절하며 정갈한 종극을 준비했다.
최은하 시인은 민중의 삶 한가운데 서서 높은 도덕적 자각으로 시어를 품어온 시인이었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선량의식(善良意識)을 철저히 배격하였고, 문단의 일부 선택된 자들끼리 주고받는 암호 같은 폐쇄적 시학을 배척하였다. 모든 이가 통찰할 수 있도록 그의 목소리는 명징하고 또렷하였다. 끼리끼리 파당을 일삼고 세상의 불꽃을 알지 못하는 문단의 모순 앞에서는 단호하게 칼날을 세웠다.
진리 속에는 싹을 틔울 씨앗이 있고, 사랑이야말로 시를 태우는 불길이라 믿었기에 타협하지 않는 열정을 태웠다. 그러나 지리멸렬한 세상은 때로 거장의 죽음 앞에서도 비열함을 드러낸다. 한 선비라 자처하는 함모 문인은 과거 선거에서 한 표를 주지 않았다 하여 고인이 된 선생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험담을 뱉어냈다. 법에서도 망자에게는 사법의 잣대를 거두는 법이거늘, 죽은 자의 뒤에서 각을 굴리는 자세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학인은 최은하 시인의 제자도 아니며 그의 시적 영향을 직접 받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선생을 지극히 경외했던 까닭은 그의 타협 없는 선비적 기질과 후학을 온 마음으로 아꼈던 거룩한 태도 때문이었다. 선생은 황금찬 시인과 함께 20년이 넘도록 ‘보리수 낭송회’를 이끌며 문학의 뿌리를 내렸다. 나이 지긋한 노시인이 후학들에게 시 두 편을 가져오게 하여 세심하게 합평을 지도하던 모습은 참된 선학의 본보기가 되었다.
기독교 문인협회 회장과 한국현대 시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면서도 결코 권위의 의자에 앉지 않았다. 형님으로 모셨던 권일송 시인이 별세했을 때 빈소를 차마 떠나지 못하던 선생의 깊은 의리는, 훗날 선생이 별이 되었을 때 권일송 시인의 장남 권혁 선생이 빈소를 찾게 한 아름다운 인연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서 민중의 개인적 자유와 자각을 품어왔던 선생의 역사관은 권일송, 황금찬 시인과 궤를 같이하였다. 사모님이 먼 길을 떠나신 후 소월의 숨결이 남아있는 왕십리 미나리꽝 자리 아파트에서 홀로 고적함을 견디던 선생은, 대학로 보리밥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후학과 만나 시학을 나누곤 하였다. 때로는 황송문 교수와 함께하며 삶과 시를 논했던 그 시간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립다. 바쁜 일상이라는 핑계로 선생과 만남을 종종 미루었던 기억이 참회처럼 가슴을 친다.
선생은 일찍이 2008년 시집 『마침내 아득하리라』를 통해 아득함이라는 경지를 정의하였고, 2019년 『푸른 별나라 풍경』을 발표하며 이 땅에서의 시적 결산을 이미 마쳤다. “돌아보면 엊그제만 같은데 차암(선생이 자주 쓰던 단어) 먼 길을 돌아온 듯싶다”라는 선문(禪門)과 같은 시구를 남긴 채, 선생은 성하(盛夏)의 한가운데서 고요히 기울어갔다.
강인한 자존과 초연함으로 자신의 마지막 길조차 스스로 닦아간 별밭 최은하 선생. 이제 땅 위의 무익한 소란과 잡음은 모두 들녘에 날려두고, 먼저 올라가신 권일송 형님, 황금찬 시인과 반갑게 재회하였을 것이다. 그곳 하늘의 푸른 시의 마을에서, 천상을 가르는 기러기의 궤적에 대하여, 그리고 영원을 스치는 바람, 별에 대하여 아름다운 시의 건축을 이어가기를 삼가 고개 숙여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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