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6년 08월 12일(수) 16:25 가+가-

희망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희망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감정 중의 하나입니다. 희망이란 동이 트는 아침과도 같습니다.
희망의 생리작용을 연구한 제롬 그루프먼 교수는 그의 저서 ‘희망의 힘’에서 ‘희망이란 마음의 눈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볼 때 경험하는 상승 감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담대한 희망은 청소년기에 술과 마약으로 방황했던 오바마를 절망에 늪에 빠지지 않게 하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게 했습니다.
희망을 심는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이야기하고, 부정보다는 긍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불가능한 한계보다는 가능성을 말합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에 방점을 찍어 줍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대전 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각하게 됩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합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탑니다. 그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합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결연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곳에는 오직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 가진 것을 세어 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명한 강철왕 카네기의 사무실 한가운데 벽에는 낡은 커다란 그림 하나가 그의 평생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거나 골동품적인 가치가 있는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그림 내용은 커다란 나룻배 하나와 배를 젓는 노가 썰물 때에 밀려서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것으로. 무척 절망스럽고 처절하게까지 보이는 그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글귀가 씌어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사람이 카네기에게 어째서 이 그림을 그렇게 사랑하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가 청년 시절에 세일즈맨으로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며 물건을 팔았는데. 어느 노인 댁에서 이 그림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 그림이 퍽 인상적이었고, 특히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글귀는 오랫동안 그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8세 되던 해에 기어코 그 노인을 찾아가 용기를 내어 청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는 이 그림을 자기에게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노인은 그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카네기는 이 그림을 평생 소중하게 보관했고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말을 그의 생활신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미국 대륙 횡단 철도를 건설할 때였습니다.
인디언의 습격도 있었고, 산에 터널을 뚫을 때는 흙벽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철도 공사를 감독한 헨리 카이저라는 책임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밤새 엄청난 폭우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산사태가 나서 이제까지 닦아놓았던 철길이 다 소실되어 버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든 건설 장비들이 흙더미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동안 했던 일을 다 포기하고, 그 수고가 다 수포가 되는 듯 여겨졌습니다.
드디어 폭풍우가 걷히고 햇볕이 비쳤을 때, 인부들과 관계자들은 참담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완전한 절망이라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때 카이저 감독은 그 진흙 무더기를 바라보며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 눈에는 거대한 진흙 무더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저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이 비취는 그것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진흙더미를 뚫고 힘차게 달려가는 기차가 제 눈에 보일 뿐입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인부들은 절망을 보았지만, 헨리 카이저는 희망을 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도 이 같은 큰 절망이 가로막고 있다 하더라도 믿음의 눈을 갖고 희망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절망은 사람을 무능하게 합니다. 희망을 사람에게 절망을 이기는 힘을 줍니다. 희망은 우리 사람에게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