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출신이 권력의 옷을 입을 때의 비극의 극치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8월 11일(화) 16:19 가+가-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 언론의 정당한 취재 활동을 막아서거나 제지하는 광경은 정치권에서 매우 아이러니한 장면 중 하나에 속해 있다.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 통신위원장이자 언론개혁을 주창해 온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이 현장 취재 중이던 취재진의 카메라를 가로막거나 취재 행위에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 논란을 일으킨 사건 역시 이러한 맥락에 맞닿아 있다. 언론의 생리와 취재권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할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 정작 권력을 쥔 이후에는 언론의 질문을 통제하려 드는 모습은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개인의 일탈이나 우발적인 감정 대립에 그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와 취재의 권리는 성역 없이 보장받아야 하는 핵심 가치에 위치해 있다. 과거 언론계 현장에서 취재의 자유를 외치고 알 권리를 강조하던 인물이 막상 자리를 옮겨 권력의 입장에 서게 되면, 언론을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위협하는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자기가 몸담았던 전문 영역의 윤리와 가치를 정치적 이해관계 아래 두고 후퇴시키는 비극적인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돌아보면 자신이 오랜 시간 일하며 전문성을 쌓아온 직업군 출신일수록, 정치 권력을 잡은 뒤 해당 영역에 대해 더 깊은 이해와 존중을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심각한 이해 부족과 왜곡을 노출하는 경우가 자주 관찰되고 있다. “내가 그 분야를 잘 안다”라는 자신감은 공적 성찰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의도를 단정 짓거나 절차를 무력화하는 자의적인 권력 행사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의 가장 극단적이고 위험한 형태는 법을 다루던 검찰 출신 정치인들에게서 명확히 목격되고 있다. 법치주의와 공정한 법 집행을 상징해야 할 검사 출신 인사들이 권력의 중심에 선 이후, 법을 정의의 수단이 아닌 권력 보위와 상대방 탄압의 도구로 악용하는 ‘법의 왜곡’을 서슴지 않는 현상이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궤변과 법치 왜곡의 가장 흉포하고 전형적인 표본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평생 수사권과 기소권을 쥐고 법을 집행해 왔던 윤석열은 정작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된 이후, 법을 공정하게 적용하기는커녕 자신의 입맛에 맞춰 법 해석을 비틀고 헌법적 절차를 형해화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검찰이라는 권력 기관에서 체득한 무소불위의 권위주의적 시각은 국정 전반에 투영되었으며, 법치를 외치면서도 정작 법의 정신을 가장 앞장서서 훼손하는 정반대의 행보로 나타났다. 법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던 검찰 출신이 역설적으로 법을 가장 흉포하게 왜곡하는 주범이 된 실제 사례가 똑똑히 증명되고 있다. 결국, 검찰 출신의 대통령의 법 미꾸라지 형태는 국민의 지탄받아 검찰 해체라는 오명을 낳고 말았다.
최민희 의원의 취재 방해 논란이나 윤석열로 대표되는 검찰 출신의 법 왜곡 현상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고 있다. 자신이 속했던 직업적 정체성을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만 이용할 뿐, 그 직업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가치와 공공성은 권력의 단맛에 빠져 망각하고 만다는 점에 있다. 언론인 출신이 언론의 입을 막고, 법조인 출신이 법을 무기화하여 법치를 파괴하는 것은 직업적 양심에 대한 자가당착이자 국민에 대한 명백한 기만에 해당하고 있다.
권력을 잡았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본질과 직업윤리의 깊이가 드러나는 법에 있다. 언론 출신이든 검찰 출신이든 자신들이 한때 수행했던 직업적 가치를 권력 행사 과정에서 부정하고 왜곡하는 행태는 반드시 경계하여야 한다.
자신이 일해 온 영역의 원칙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치인은 결코 대중의 권리를 보호할 수 없으며, 이러한 권력의 오만과 자기부정에 대한 엄중한 비판과 감시는 계속되어야 할 필요성에 있다.
국민은 순간의 불찰로 볼 것이 아니다. 수첩에 착실하게 기록하여 그들의 퇴장에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