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구원투수? 볼 수 없는 것도 살필 수 있어!
이창용 논설위원
작성 : 2026년 08월 10일(월) 16:18 가+가-

여름이 반가운 것은 쉼으로 재충전의 기회를 만들어 가는 희망과 결실로 이어지는 기대감, 이런 것들이 기반이 되어 한 해를 풍요롭고 넉넉하게 키워갈 수 있는 원동력을 길러내는 소망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설렘과 희망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한낮 기온이 42.5도를 넘어가고, 밤이 되어도 더위가 꺾이지 않는 열대야가 지속되면서 폭염은 우리의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재난이자 두려움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는 1904년 기상관측 이후 122년 만에 경상남도 양산이 42.5도라는 한반도의 가장 뜨거운 지역으로 기록됨으로써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재난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실상들을 경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40년 전부터 세계의 ‘기후 관련 학자들’과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 “인류 공동의 미래”에 대해 경고해 왔던 선각자들의 경구들이 요즘 새삼스럽게 부각되면서 세상을 두루 살피는 조심성이 살아나고 있다.
과거에 볼 수 없었고 상상할 수 없었던 깜짝 놀랄 일들, 상식을 뛰어넘는 기후재난, 한쪽에서는 폭염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때아닌 폭설로, 홍수로, 가뭄으로 지구촌은 상처투성이다. 100년 이상을 인류가 저질러 왔던 ‘자연훼손과 온갖 오염’은 인류에게 고스란히 “재앙”으로 돌려주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현재 싸우고 있는 폭염 하나만을 보더라도 폭염을 단순히 ‘덥다’는 말로 끝낼 상황은 아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지난주까지 28명이 생명을 잃었다. 기상 전문가들은 폭염을 ‘극한기후(extreme weather)’ 현상으로 규정한다.
극히 이례적이고 파괴적인 기후 현상을 뜻한다.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있는 지구온난화로 한반도의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폭염은 더욱 빈번하고 강력해지고 있다.
우리는 폭염이라는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폭염이 점점 강해지고 있으며, 끓는 가마솥 위에서 심판의 때를 기다리는 사형수와 다를 바가 없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섬뜩함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단순히 계절의 변화라 치부하기엔 그 기세가 갈수록 가혹하다. 단순한 기상 현상을 넘어 하나의 ‘징조(Sign)’이자 시대를 향한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인류의 이기심이 축적되어 만들어낸 위기이다. 날마다 녹아내리는 빙하를 보면서 점점 강해지고 있는 인류 고통의 강도, 종말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인류 종말의 서막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경구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절박함으로 다가온다. 잔뜩 물먹은 비탈진 흙더미가 일격을 가하기 직전의 고요함 같은 위험천만한 상황, 여기서 우리는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거인으로 버티고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웅장함이다.
1992년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 “지구 정상 회의”는 34년 전에 “지구촌 공동의 미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한 ‘인류 실천과제’를 던짐으로써 환경보존을 위한 다짐이 시작되는 해로 규정할 수 있다. 당시 유엔 “지구 정상회의” 위원장이었던 노르웨이의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Gro Harlem Brundtland)’ 전 수상은 현재의 지구 상황은 앞으로 석학들이 내놓은 정책적 해법들을 외면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지속 가능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우리공동의 미래”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 사회, 윤리적 문제를 각국에서 나의 문제로 여기고 정부, 기업, 사회 공동체가 지속적인 실천을 할 때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선언과 이의 실천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세계 각국은 앞으로 지구 온난화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공존과 공생”이라는 보다 큰 가치에 협업하여 큰 변화를 일궈내는 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온 인류는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범죄자로 각국의 실정법으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동안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이를 실천하는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소홀해 왔음을 모두는 반성하여야 한다.
보다 더 큰 틀인 우주 논리로 살피건 데, 성서에서 증언하고 있는 “창조주”에 대해 인정과 겸손함으로 다가갈 필요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지속 가능한’ 삶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것에도 마음을 주어야 한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창조 논리를 뛰어넘을 다른 이론을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는 그분이 창조하였다는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환경”만이라도 사랑하여 그 섭리에 순응하며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여 구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가치에 동참하는 것이 현명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