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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에게 교회의 길을 묻는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8월 04일(화) 16:26 가+가-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도리어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었다는 탄식이 이어진다. 양적 성장에 대한 집착, 세습과 재정 문제로 인한 도덕적 실추, 교권 다툼과 개교회주의의 고립성은 현대 교회의 아픈 자화상이다. 신앙은 개인의 위로와 기복적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교회의 담장은 세상의 아픔과 격리된 채 높고 견고해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16세기 종교개혁가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 스위스 제네바)의 신학 사상은 단순한 옛 교리적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 비틀거리는 교회를 향해 매서운 경종을 울리는 강력한 시론이자 진단서가 된다.
칼뱅 신학의 대전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에 있다. 칼뱅에게 예배와 신앙생활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어야 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바른 위치를 찾게 된다. 수많은 교회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인간 중심의 종교 소비’로 대치시켰다. ‘예수 믿고 복 받아 성공하자’라는 식의 번영신학이 예배당을 지배하고, 설교는 성도들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기보다 심리적 위안과 자기 위안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변질되었다. 하나님은 주권자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채워주는 ‘거룩한 도우미’로 하락했다.
칼뱅주의는 이러한 현상을 향해 칼을 빼 든다. 인간의 욕망을 투사하여 만든 하나님은 결국 우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칼뱅은 인간의 마음을 ‘우상을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공장’이라고 표현했다. 오늘의 교회가 회복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예배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다시 묻는 일이다. 인간의 위로와 성장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이 중심에 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Coram Deo)’을 회복하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이다.
현대 교회의 또 다른 병폐는 ‘개교회주의’와 사회적 공공성의 상실이다. 자기 교회의 교인 수, 재정 규모, 건물 크기가 곧 신앙의 척도가 되었고, 대형교회와 미자립교회 간의 양극화는 세속 사회의 양극화를 그대로 닮아있다. 교회는 세상의 문제에 눈을 감은 채 자신들만의 ‘거룩한 성채’를 쌓는 데 몰두한다. 칼뱅이 꿈꾸었던 개혁주의는 결코 사적인 영성에 머물지 않았다. 칼뱅에게 세상 전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무대(Theatrum Gloriae Dei)’였다. 그는 16세기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 신학적 교리를 정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의 복지와 윤리 체계를 재구축했다. 교회의 직분 중 하나인 ‘집사(Deacon)’의 핵심 역할을 도시 내 가난한 자, 병자, 난민을 돌보는 사회적 구제에 두었다. 프랑스 등지에서 피난 온 종교 난민들을 위해 프랑스 구제기금을 조성하여 주거와 일자리를 제공했고, 공공 병원과 교육 기관을 설립했다.
칼뱅 사상이 오늘의 교회에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교회의 재정과 역량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이다. 교회가 자기 유지와 확장에만 몰두할 때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세속적 이익집단으로 전락한다. 칼뱅주의는 교회가 담장을 넘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세상의 불의와 아픔에 응답하는 공적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강조한다. 수많은 신앙인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 중 하나는 ‘주일의 신앙’과 ‘월요일의 삶’이 분리되는 이원론이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성도이지만, 일터와 사회 속에서는 세속적인 욕망과 불의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양두구육의 태도가 교회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칼뱅은 거룩함과 세속의 이분법적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다. 그는 모든 정당한 직업이 하나님에게서 온 거룩한 ‘부르심(Calling, 소명)’이라고 선언했다. 목사나 사제의 일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농부의 질경이질, 상인의 정직한 거래, 공직자의 공정한 행정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예배라는 뜻이다.
이 직업 소명설은 오늘날 교인들에게 성전 안의 기도가 삶의 현장에서 정직과 자비, 윤리적 책임으로 열매 맺어야 함을 가르친다. 성도가 세상 속에서 공정한 거래를 하고, 약자를 배려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이다. 오늘의 교회가 세상을 향해 영향력을 잃은 이유는 말이나 설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도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증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신학의 가장 유명한 명언 중 하나는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라는 문장이다. 이는 종교개혁이 16세기의 특정 사건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지속하여야 할 현재진행형의 과제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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