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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거시기’와 ‘머시기’를 알아야 한국인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7월 21일(화) 16:23 가+가-
“어제 거기서 거시기랑 거시기했는데 참 거시기하더라고.” 이 문장은 언어학적으로 완벽한 난수(亂數)처럼 보이지만, 토박이 한국인들은 이 대화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공감을 표한다. 대체 이 정체불명의 단어들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우리의 혀끝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이 만능 대치어들의 유래와 그 속에 숨겨진 인문학적 유쾌함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거시기’의 뿌리를 찾아 국어학의 숲을 헤매다 보면 흥미로운 가설들과 마주하게 된다.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는 학설은 사물을 뜻하는 의존명사 ‘것’에서 유래했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눈앞의 무언가를 지칭할 때 쓰는 “그것”이나 “거기 있는 것”이 세월의 강을 건너며 음운 변화를 겪었다는 해석이다.
지시대명사 ‘거(그)’에 ‘것’이 붙고, 여기에 명사나 지칭을 만드는 접미사 ‘-이’나 ‘-기’가 결합하면서 ‘그것이, 거시이, 거시기’의 형태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영어로 치면 눈앞의 사물이나 상황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때 얼버무리는 ‘Thingamajig(거시기)’나 ‘What-do-you-call-it(그거 뭐냐)’이 아예 공식 단어로 굳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머시기’는 어디서 왔을까? 이 또한 계보가 만만치 않다. 중세 국어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을 뜻하는 의문대명사 중에 ‘므슥’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 ‘므슥’에 접미사 ‘이’가 붙으면서 ‘므스기, 무스기, 무시기’를 거쳐 오늘날의 ‘머시기’로 정착했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즉, ‘머시기’는 질문의 성격을 띤 “무엇”에서 출발했고, ‘거시기’는 지시의 성격을 띤 “그것”에서 출발하여 오늘날의 쌍둥이 만능어로 거듭난 것이다.
또 다른 재미있는 학설도 있다. 옛 방언 중에 마음이 어색하고 난처할 때 쓰던 ‘거석하다’ 혹은 ‘머석하다’라는 동사가 있었다는 기록이다. 말을 꺼내기가 쑥스럽거나 상대방의 체면을 차려주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서 “아, 참 거석하네”라고 얼버무리던 태도가 단어화되어 ‘거시기’가 되었다는 설이다.
출발점이 무엇이든 분명한 사실은 하나 있다. ‘거시기’와 ‘머시기’는 정교하게 짜인 표준어의 문법 세계를 교란하는 무법자가 아니라,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입술과 귀를 거치며 다듬어진 가장 한국적인 대명사이자 감탄사라는 점이다.
흔히 ‘거시기’라고 하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읊조리는 영화 속 조연들을 떠올리기 쉽다. 황산벌 전투를 다룬 영화에서 “백제 군사들이 거시기할 때까지 거시기해라!”라는 장군의 특명이 군사들에게 완벽히 접수되는 장면은 가히 ‘거시기 학문’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달리 ‘거시기’는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다. 대한민국 표준국어대사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고결한 ‘표준어’다. 국어사전은 거시기를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거나 밝히기 곤란한 처지일 때 대칭하는 대명사”이자 “말이 얼른 나오지 않을 때 쓰는 감탄사”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전라도 지역에서 이 단어의 효용성을 극대화하여 동사로도 쓰고(거시기하다), 형용사로도 쓰고(거시기하네), 부사로도 쓰며 그 쓰임새의 스펙트럼을 우주만큼 넓혀놓았을 뿐이다. 평안도나 경상도, 충청도에서도 형태나 억양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그거 머이냐”, “저시기” 같은 형태로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언어적 장치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서양의 언어가 단어 자체의 명확한 뜻과 논리적 구조를 중시하는 ‘텍스트(Text) 중심의 언어’라면, 한국어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과 분위기,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중시하는 ‘콘텍스트(Context, 맥락) 중심의 언어’다. ‘거시기’는 바로 이 맥락 중심 언어의 끝판왕이자 완벽한 증거물이다.
집안 어른이 안방에서 “에미야, 저기 거시기 좀 가져와라” 하고 툭 던진다. 이때 ‘거시기’가 안경인지, 물컵인지, 혈압약인지는 오직 며느리의 맥락 파악 능력에 달려 있다. 어른의 시선이 머무는 방향, 지금이 식사 시간인지 잠자리에 들 시간인지의 타이밍, 그리고 고부간에 쌓아온 다년간의 데이터베이스가 결합하는 순간, 형체 없던 ‘거시기’는 ‘물컵’이라는 명확한 실체로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한다.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뇌 회로가 멈추려 한다면, 당황하지 말고 혓바닥 위에 이 마법의 주문을 올려놓아 볼 일이다.
“아따, 그…. 거시기 있잖아!”
그 순간, 당신과 눈을 맞추고 있는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다정한 단어가 반짝이며 솟아오를 것이다.
언어의 재미와 인간미란 바로 이런 빈틈에서 피어나는 법이기에, 우리의 ‘거시기’와 ‘머시기’는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남아 우리네 삶을 구수하게 버무려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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