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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심 앞의 감언이설, 국익 앞의 발목잡기 호남 반도체 투자를 가로막는 정치를 규탄한다
문재홍 광주대학교 평생교육원인문·교양 교육 강사
작성 : 2026년 07월 19일(일) 15:54 가+가-
선거철마다 호남의 기차역과 전통시장에는 어김없이 정장 차림의 정치인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하나같이 호남의 소외된 경제를 살리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달콤한 약속을 쏟아낸다. 낙후된 호남을 첨단 산업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그들의 다짐에 지역민들은 다시 한번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여의도로 돌아간 그들의 지행(知行)은 전혀 다르다. 국가 미래 먹거리이자 호남 발전의 핵심 돌파구인 ‘호남 반도체 투자’ 법안과 예산 앞에서는 싸늘한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심지어 정략적 논리를 들이대며 반대 세력으로 돌변한다. 호남에 와서는 발전을 외치고, 돌아가서는 발목을 잡는 이 이중적 정치 논리의 본질은 무엇이며, 왜 이것이 호남과 대한민국 모두에게 치명적인 죄악이 되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첫째, ‘수도권 대 비수도권’이라는 낡은 진영 논리의 함정
일부 정치인들은 호남 반도체 투자를 반대하거나 외면하면서 “반도체 생태계는 이미 경기도 평택과 용인 등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호남에 분산 투자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대기업 중심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한다. 혹은 거꾸로 “수도권 규제 완화가 먼저 방어되어야 한다”는 식의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는 지독한 무지와 정략적 계산의 합작품이다. 반도체 산업은 대한민국 생존의 문제다.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호남은 풍부한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 기반을 갖추고 있어, 글로벌 기업들이 필수로 요구하는 ‘RE100(재생에너지 100%)’을 달성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전력 포화 상태에 이른 수도권 대신 호남에 반도체 복합 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단순한 지역 안배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적 선택이다. 이를 외면하는 정치인들은 국익보다 당리당략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둘째, ‘표 표심’만 챙기고 ‘책임’은 버리는 기회주의 정치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호남 주민들을 ‘지속 가능한 발전의 주체’가 아닌, 오직 선거 때만 필요한 ‘표밭’으로만 취급한다는 점이다. 표가 필요할 때는 “호남의 눈물을 닦아주겠다”, “첨단 대기업을 유치하겠다”고 약속하지만, 막상 국회에서 예산안을 심의하거나 규제 완화 법안을 다룰 때는 수도권 표심이나 자당의 정당 지지율을 저울질하며 호남의 요구를 뒷순위로 밀어낸다. 지방이 소멸해 가고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비극 속에서도, 정치인들은 “예산의 균형 편성”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호남의 대형 국책 사업을 축소하거나 발목을 잡는다.
지역 발전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정치는 결국 호남을 고립시키고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을 뿐이다. 호남 유치 반대나 소극적 태도에 대해 “시기상조”라거나 “재정 건전성”을 운운하는 정치인들의 논리는, 결국 지방은 영원히 낙후된 채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패배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호남 주민들은 더 이상 선거철의 화려한 수식어에 속지 않는다.
호남에 와서 눈물 흘리며 상생을 외쳤던 정치인들이여, 진정 호남을 위한다면 지금 당장 국회에서 호남 첨단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과 인프라 구축을 위한 법안 통과에 앞장서라. 말과 행동이 다른 기만적 정치는 결국 호남 시·도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변명은 끝났다. 이제는 행동으로 증명할 때다.
대한민국 현대정치에서 호남은 늘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지역이었다. 민주화의 상징이었고, 정권교체의 중심축이었으며, 한국 정치의 양심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상징성과 정치적 존재감에 비해 호남이 실제로 누려온 경제적·사회적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많은 호남 주민들은 “정치적으로는 늘 중요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늘 뒤로 밀렸다”는 박탈감을 토로한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국가 발전 전략의 중심축에서 호남이 오랫동안 비켜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수도권에는 행정·금융·교육·첨단산업이 집중됐고, 영남권에는 제조업과 수출산업 기반이 빠르게 형성됐다.
반면 호남은 농업 중심 지역이라는 이미지에 갇힌 채 국가 기간산업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서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속도로, 산업단지, 대기업 공장, 연구개발 거점, 항만과 물류 네트워크 등 성장의 핵심 자원들이 다른 지역에 우선 배치되면서, 호남은 인구 유출과 일자리 부족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즉, 지역의 경쟁력이 낮아서 소외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성장의 출발선 자체가 불균형하게 설계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호남 소외의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군사정권 시절부터 누적된 정치적 배제의 역사이기도 하고, 특정 지역 중심의 산업화 정책이 남긴 구조적 불균형이기도 하며, 수도권 집중이라는 대한민국 전체의 병폐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소외를 기억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일이다. 이제 호남은 ‘억울한 지역’이라는 프레임을 넘어,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핵심 축이자 미래 산업 전환의 전략 거점으로 자신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정치가 지역민의 상처를 반복해서 호소하는 데 그친다면 호남의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가 상처를 자산으로 바꾸고, 소외의 기억을 발전 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호남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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