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분열’과 ‘공동체’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이창용 논설위원
작성 : 2026년 07월 13일(월) 16:25 가+가-

우리 사회는 선거를 거듭할수록, 또 주요 정책을 공지할 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분열되고 공동체 사회가 나누어지는 양상을 경험하게 된다.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볼테르의 명언에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이 말은 민주주의적 공존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보여준 것으로써, 내가 맞고 네가 틀렸음을 증명해 내는 것보다, ‘나와 다른 너’의 존재와 목소리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서툴더라도 함께 살아갈 규칙을 끊임없이 갱신해 나가는 것. 서로 다른 이들의 공존을 지켜내기 위한 인간의 고귀한 철학적 합의이다. 일정한 테두리라 할 수 있는 법과 질서 안에서의 경쟁과 공존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공존의 가치를 현실에서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민주주의의 작동 메커니즘이다. 모든 주체가 그저 “우리 다 함께 공존합시다”라고 말만 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낭만주의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아노미)로 끝나기 쉽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이니까, 민주주의는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경쟁’을 인정하되 그것을 ‘법과 질서’라는 단단한 울타리 안에 가두어 ‘공존’으로 승화시켜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가치 창조의 도구다.
해를 거듭하다 보니 정치를 싸움판으로 비유하는 대중들이 많다. 심지어는 정치를 하고 있는 그들마저도 죽기 아니면 살기란다. 이런 정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자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왜 그렇게 신짝을 걷어붙이고 혈안이 되어가는 것일까? 뿌리 깊은 벼슬 문화?는 당선만 되면 곧 권력이요 돈이요 명예이요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 같다.
또한 당선되면 패거리 정치에 올인 하여 상대방을 밟아야 하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괜찮단다. 이쯤 되면 제도를 손질하여 선거는 꼭 해야 하는 최소한의 자리에 국한하여 실시하고 공동체 붕괴를 막아내는 일이 어느 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아닌가?
우리는 대의제(代議制)를 채택하고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수결 원리를 따른다.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보다 합리적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어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영할 만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민(民)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내용을 늘어놓는 이유는 알 만한 사람들이, 반드시 이 과정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만을 강변하며 ‘다른’ 상대를 틀렸다고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친 말로 감정을 자극하면서 ‘다름’을 ‘틀리고 나쁜 것’으로 몰아가는 행태를 당연한 듯 자행하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암담하다.
이런 저급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유권자들이 경계하여 선거 때 표로 심판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까마귀를 흉조로 여기지만, 영국에서는 길조로 여긴다. 일본에서는 밥그릇을 손으로 들고 먹지만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상 위에 놓고 먹는다. 자동차가 좌측으로 통행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우측으로 하는 데도 있다. 식사할 때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는 나라도 있고 젓가락을 이용하거나 맨손으로 먹는 나라도 있다. 나라마다 언어와 기후, 지리적 특성과 역사, 먹는 음식 등이 다른 것처럼 문화도 천차만별이다. 이를 두고 어느 한쪽이 ‘틀렸다’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개개인이 다르다. 그러나 이 ‘다름’이 인간관계에서는 자주 갈등의 원인이 된다. 가까운 가족이나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라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때로 의견 충돌을 빚는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결국 “민주주의는 천국을 만들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사회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철학자 칼 포퍼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인류가 찾아낸 가장 완벽한 이념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을 통제하기 위해 발명해 낸 가장 영리한 ‘제도적 브레이크’이다.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1+1=3이라고 계산하거나, 지구가 직사각형이라는 주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O’을 보고 숫자라 말하는 사람이 있고, 영어 알파벳 혹은 도형, 한글 자음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틀린 것이 아니라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무의식중에 ‘다르다=틀리다’라고 판단한다. 내 눈에 ‘O’가 숫자로 보이면 다른 사람도 당연히 숫자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도형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비난하는 식이다. 생각의 차이를 두고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선거가 거듭되면 될수록, 여소 야대의 국회가 구성되면 될수록 붕괴로 가는 사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