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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야구부 5·18 비하 논란, 왜 정치권은 학생 징계를 ‘역사 전쟁’으로 바꾸는가?
문재홍 광주대학교 평생교육원인문·교양 교육 강사
작성 : 2026년 07월 12일(일) 16:03 가+가-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5·18 비하 발언 논란은 처음에는 학교폭력과 학생선수 징계의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사건이 확산되는 과정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서울의 한 고교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 지역 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고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안은 더 이상 학교 내부의 생활지도 문제로 머물지 않았다. 체육계 징계 문제를 넘어 5·18 역사 인식, 호남 지역 비하, 표현의 자유와 책임, 정치권의 역사관 경쟁이 한꺼번에 얽히는 전국적 논쟁으로 번졌다. 왜 정치권은 학생들의 잘못된 언행에 대한 징계 문제에까지 뛰어드는가. 그 이유는 이 사건이 단순한 학생 일탈 사건이 아니라, 한국 정치가 오랫동안 품어 온 역사와 지역, 이념의 균열을 다시 건드렸기 때문이다.
우선 이 사건은 일반적인 학교폭력 사안과는 결이 다르다. 학교폭력은 보통 학생 간의 물리적 충돌, 언어폭력, 집단 따돌림, 온라인 괴롭힘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특정 학생 개인에 대한 공격을 넘어, 광주라는 지역과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상징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국가폭력과 시민 저항, 그리고 헌정 질서 회복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광주 시민들에게는 가족의 상처이자 지역의 기억이며,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민주주의의 희생과 복원의 역사다. 이런 사건을 경기장 안의 “철없는 학생들의 말실수” 정도로만 축소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를 입는 대상이 특정 학생 몇 명이 아니라, 한 지역의 역사와 공동체의 존엄, 더 넓게는 민주주의의 기억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이 사안에 개입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5·18이 한국 정치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5·18은 박물관 속에 봉인된 과거가 아니다. 오늘의 정치가 어떤 민주주의를 말하는지, 국가폭력과 시민 저항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지역차별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가 집약되어 있는 상징이다. 따라서 5·18을 조롱하거나 폄훼하는 듯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은 곧바로 각 정당과 정치세력의 역사 인식을 시험하는 문제로 바뀐다. 어떤 정치세력은 이를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행위”로 규정하며 강력한 징계와 교육을 촉구한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학생들의 일탈에 대한 과도한 처벌”,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정치적 과잉 대응”이라는 프레임을 제기한다. 사안의 본질은 학생들의 부적절한 언행인데, 정치권이 뛰어드는 순간 이 문제는 곧바로 ‘5·18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역사 전쟁의 성격을 띠게 된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 정치에서 호남과 5·18이 단순한 지역 이슈가 아니라 전국 정치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호남은 오랫동안 정치적 소외와 차별의 경험을 겪어 왔고, 5·18은 그 상처의 가장 아픈 중심에 있다.
따라서 광주를 향한 비하 발언이나 5·18에 대한 조롱은 단순한 지역감정의 문제를 넘어, “호남은 여전히 무시받아도 되는가”, “민주화의 역사는 함부로 희화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정치권이 이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만큼 호남 민심과 역사 문제의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가 멀든 가깝든, 정치권은 늘 지지층과 지역 민심을 의식한다. 누군가는 역사 왜곡과 지역 혐오에 단호히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 주려 하고, 누군가는 징계의 과잉성을 지적하며 다른 지지층의 정서를 대변하려 한다. 결국 정치권의 개입은 원칙과 가치의 문제인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표 계산의 정치이기도 하다. 세 번째 이유는 이번 사건이 ‘징계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발언 자체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체육단체와 학교가 내린 징계가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여기서 보수 정치권 일부는 집단책임의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 발언을 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팀 전체에 장기간 출전정지 같은 중징계를 내리는 것이 정당한가, 학생의 장래를 과도하게 막는 것은 아닌가, 교육적 지도보다 정치적 상징 조치가 앞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다. 반대로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쪽에서는, 학교 운동부 특성상 집단 문화와 침묵의 동조가 문제를 키웠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5·18과 광주를 조롱하는 발언이 반복되고 공유되었다면, 이는 개인의 실수 차원을 넘어 팀 문화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5·18과 지역 비하 발언은 장난이나 실수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징계는 감정적 보복이 아니라 교육적 책임과 공동체적 경각심을 세우는 방향이어야 한다. 셋째, 학교와 체육계는 학생선수들의 인권·역사 교육을 일회성 사과문으로 끝내지 말고 구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넷째, 정치권은 학생들의 잘못을 자기 진영의 역사 전쟁 도구로 소비하는 태도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아픈 역사를 얼마나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지역 비하와 역사 조롱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 학생의 잘못을 교육으로 바로잡을 것인가, 아니면 정치의 먹잇감으로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하지 않다면, 비슷한 일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5·18을 둘러싼 갈등을 또 하나의 진영 전쟁으로 소비하는 순간, 우리는 학생들의 망언보다 더 큰 사회적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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