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한국 혐오 문화, 곯기 전 대책 마련 필요
박성민 논설위원 편집국 국장 (진도 담당)
작성 : 2026년 07월 09일(목) 16:46 가+가-
다문화와 다인종을 체험한 사람은 다인종과 다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며 인정한다.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사랑을 베풀 줄 알며, 친절을 받은 사람만이 친절을 되돌려 준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혐오가 일상화되었다. 혐오를 받은 사람은 혐오로 답한다. 우리 사회가 선순환이 아닌 악순화의 구조로 가는 길에 놓였다.
혐오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 인정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간다. 혐오를 제도적으로 방지할 법적 미비도 원인이지만 한국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혐오의 도덕적 테두리가 사라지면서 문제가 깊어진다.
한국 혐오 문화는 디지털의 초고속 발달과 초경쟁사회 구조가 가져온 폐해이다. 여기에다 거대 양대정당이 과거 지역주의로 편 가르듯이 내 편과 네 편의 갈라치기를 통해 혐오 문화를 심화시켜 왔다.
우리 사회 혐오는 초경쟁에 시달리는 일부 청소년과 청년들이 사회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사회적 약자층, 특정 사건 피해자나 특정 지역, 외국인을 대상으로 조롱하거나 비하로 푼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광주전남지역 발전에 호재로 작용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발표이후 도를 넘어서는 조롱과 비하가 극우 사이트와 커뮤니티에서 넘쳐난다. 국토균형 발전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광주전남은 안된다는 무차별적인 비하는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다. 논쟁과 비판은 사회 발전을 앞당기지만 맹목적인 조롱과 비하는 사회 분위기를 혐오와 불신의 길로 몰게 된다.
물론 혐오가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아시아인과 히스패닉계, 이민자, 정치 반대파를 상대로한 혐오 분출이 총기 난사와 같은 증오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국은 커뮤니티와 SNS을 중심으로 밈 등으로 언어화와 희화화가 사건별로, 사안별로 이뤄진다. 미국보다는 다행스런 측면도 없잖아 있지만 총이나 칼보다 펜의 힘에 영향력이 더 강력하다는 격언처럼 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고 도려내는 고통을 준다.
세계 제2차대전의 주범 나치즘이 발생한 독일은 반유대주의, 난민이나 이슬람계 이민자를 혐오하는 문화가 있지만 정치적 방법이외는 처벌받게 된다. 독일은 나치 찬양이나 인종 혐오시 형법상 국민 선동죄로 즉각 형사처벌을 한다. 법으로 혐오를 잠재워 왔다.
이처럼 혐오 문화는 모든 국가에 존재한다. 국가별로 혐오 대상이나 분출 방법은 해당 국가의 역사나 문화 등에 따라 각기 다르며 처벌 방법도 다양하다.
극우와 혐오문화 간의 상관관계는 밀접하다. 여론의 변두리에 머물며 소규모 세력으로 부정선거 음모론 등 극단적 주장이 제도권 정치로 받아들여지면서 극우를 중심으로한 혐오가 일상화됐다.
이들은 유튜브와 틱톡 등 대안 미디오 플랫폼을 중심으로 극우 성향 콘텐츠가 막대한 돈벌이가 되면서 폐해는 늘고 있다. 가짜 뉴스와 조작된 음모론, 자극적인 타인혐오 등을 생산하면 할수록 더 많은 조회수와 후원금이 모이는 구조다. 7월부터 허위조작 정보법이 시행되면서 가짜뉴스를 고의로 유포시 최대 10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된다.
최근 스타벅스의 5·18 비하 탱크데이 논란이 그치기도 전에 고교야구대회에서 배재고팀이 광주일고를 상대로 경기중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탱크데이”라는 응원가를 불렀다.
스타벅스의 ‘탱크데이’는 홍보 마케팅용으로 5·18민주화운동의 역사 왜곡이 깔려 있기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이 민감한 시기에 탱크데이 응원가를 부르는데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니 아쉽다. 배제고는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설립한 학교로 최초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3·1 운동당시 만세 운동에 참여해 광주일고 학생운동의 맥과 같이한다. 그런 고교가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응원가를 부르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혐오 문화는 결국 마음에 쌓인 것을 내보내는 구조이다. 마음에 쌓여있는 그 무엇, 사회의 구조나 경쟁사회, 조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운동이나 다른 정상적인 방식이 아닌 혐오로 푸는게 혐오문화이다. 한국 사회의 터에 무엇이 자라도록 허용하고 멀리할지는 한국 사회 구성원이 결정해야 할 중요 문제이다.
혐오문화는 어느 국가나, 어떤 사회에서든지 반드시 나타난다. 사회가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혐오문화를 사회의 선순환구조로 받아들여 악순환의 병폐를 끊어야 한다.
개인의 도덕성과 사회성, 인격은 배움을 통해서만 나온다. 한국의 혐오문화는 심화 과정에 놓인 상태다. 더 늦어지면 곯게 된다. 곯게 되면 짜내는 아픔과 치료 과정을 겪어야 한다. 치료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기 전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