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를 하자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6년 07월 08일(수) 16:46 가+가-

미국의 유명한 실업가이자 자선 사업가인 록펠러가 한 호텔에 묵었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 측은 이름난 부자로 알려진 그를 맞이하여 작은 실수라도 없게 하려고 무척 신중을 기했습니다. 록펠러가 머무는 동안 그의 시중을 들게 된 젊은 종업원은 지배인으로부터 세심하게 신경을 쓰라는 특별 당부를 받고, 혹시라도 록펠러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눈치 있게 알아서 척척 해내는 종업원의 태도에 록펠러는 매우 만족해하면서 속으로 쓸 만한 젊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호텔을 떠나게 된 록펠러는 그동안 자신을 돌봐 준 종업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호텔의 규정대로 숙박료 일부에 해당하는 만큼의 서비스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 호텔을 나오다가 등 뒤에서 종업원이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쳇, 미국의 대부호가 겨우 요만큼의 팁을 주네.” 록펠러는 호텔 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서서 그 종업원을 불러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 말대로 나는 지금 당장 자네에게 많은 액수의 팁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미국 최고 부자임이 틀림없네. 그러나 내가 자네에게 규정 이상의 팁을 주는 순간 자네는 호텔 서비스맨이라는 당당한 지위에서 적선 받는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위치로 전락하고 마는 거라네. 왜 스스로 그 같은 위치로 전락하려 하는가?”
말을 마친 록펠러는 걸음을 옮기려다 다시 멈춰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자네를 눈여겨보면서 성실한 태도에 호감이 가 우리회사에 특채를 할 까 생각했는데 자네 스스로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군.”
록펠러의 충고를 들은 종업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스는 매우 병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청년기에 그가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이런 몸 상태로 계속 과로하면 1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휴식이 최고의 묘약입니다.”
윌리암 부스는 그 말에 크게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규칙적인 생활과 사회의 약자들을 돕는 봉사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주위의 우려를 말끔히 씻고 83세까지 장수했습니다.
그의 아들 브람웰 부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계단을 오를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스무 살을 넘기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혀를 찼습니다. 그러나 브람웰 부스도 73세까지 열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온통 ‘봉사’와 ‘사랑 실천’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노동은 ‘장수’와 ‘건강’을 선물합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누립니다.
제임스 스미스는 오리건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류머티즘 치료제를 파는 제약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취직했습니다. 그러나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사표를 쓰겠다고 매니저에게 말했습니다. 1주일이 넘도록 열심히 뛰었지만, 전혀 매상을 못 올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일즈맨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매니저는 그의 사의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스미스는 입사할 때 이미 봉급과 영업비를 전액 가불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류머티즘으로 고생하고 있는 한 중년 부인을 만나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스미스와 한참 상담하고 나더니 약을 여섯 병이나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거액의 수표를 끊어주었습니다. 스미스는 그제야 비로소 세일즈의 비결을 발견했습니다. “팔기 전에 먼저 서비스하자.” 그는 가장 매상을 많이 올리는 사원이 되었습니다. 25년 후에는 세계 굴지의 제약회사 경영인이 되었습니다. 성공하고 싶은가. 먼저 남을 위해 베풀라. 서비스 정신을 가지라. 좋은 서비스를 받아야 좋은 서비스를 펼칠 수 있습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더 사랑을 베풀 수 있듯이 훌륭한 서비스를 받아본 사람만이 훌륭한 서비스를 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는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온몸으로 체험해 본 사람만이 동일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도 훈련입니다. 고도의 창조적 훈련을 요구합니다.
마네킹처럼 박제된 표정의 ‘연기’가 아닙니다. 산 인격입니다. 사랑입니다. 체화된 삶 그 자체입니다. 한걸음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자기 안의 ‘또 다른 나’를 섬기는 것이며, 자기 삶을 다시 창조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