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이렇게 살아라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7월 07일(화) 16:28 가+가-

뮤지컬 배우 카이가 전한 고(故) 이순재 선생의 마지막 무대 일화는 대중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준다. 먹먹한 잔상을 남긴다. 거동조차 힘겨운 몸을 이끌고 끝내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무대에 올랐다.
노배우.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미 무대에 올라야 한다고 결심한 얼굴”로 소명을 다한 뒤 병원으로 향했던 그의 뒷모습은, 인간이 자신의 업(業)을 대할 때 가져야 할 숭고한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로서의 소명과 관객에 대한 신의만을 남기고 떠난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이자 교훈이었다.
이 아름다운 퇴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한구석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명예와 책임을 아름답게 마무리 지은 거목의 뒷모습과 대조적으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이른바 ‘지도층’이라 불리는 이들이 보여주는 볼썽사나운 집착 때문이다.
특히 사회의 도덕적 보루이자 방향타가 되어야 할 정치인과 종교인들, 교육자, 언론, 법조인이 보여주는 행태는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더 많은 부(富)를 쥐기 위해 추태를 부리는 이들의 모습은 이순재 선생이 남긴 고결한 발자국과 너무나도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우리는 왜 이토록 어쭙잖은 자들의 탐욕에 고통받아야 하는가.
정치와 종교, 언론, 법조인은 본래 공동체의 갈등을 조정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숭고한 행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정치, 종교 언론, 법조인의 무대를 채우고 있는 자들은 어떤가. 그들에게선 국가와 국민에 대한 소명 의식도,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겠다는 책임감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발견되는 것은 자기 정제(Self-Refinement)가 전혀 되지 않은 가벼움과 내면의 결핍을 권력으로 채우려는 비뚤어진 욕망뿐이다.
스스로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며, 자신의 욕망이 공동체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절제하는 내면의 검열 과정이다.
오늘날의 권력자들에게서는 이 정제의 흔적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행하는 언론과 정치는 생산적인 비전 제시가 아니라, 개인의 사적인 원한과 결핍, 그리고 진영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한(恨)의 정치’에 가깝다.
과거의 상처나 열등감, 혹은 채워지지 않은 물질적·명예욕을 권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통해 보상받으려다 보니, 정치는 타협 없는 전쟁터가 되고 사회는 극단으로 분열된다. 부끄러운 현실은 막돼먹은 정치인을 추앙하는 세력들과 같이하는 무리다. 이들은 자리에 앉아 있을 때도,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도 추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온갖 편법과 꼼수를 동원한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는커녕,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직을 사유화하고 법망을 피해 갈 궁리만 한다.
이순재 선생이 건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객과의 약속’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반면, 이들은 ‘국민과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으며 오직 ‘자신의 자리’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무엇이 진짜 어른의 모습이고, 무엇이 어쭙잖은 인간들의 탐욕인가.
정치권 언론의 타락보다 더 뼈아픈 것은 종교계의 오염이다. 종교는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물질적 욕망을 초월하여 영적인 구원과 도덕적 안식을 추구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종교인은 마땅히 세상의 물질적 가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어쭙잖은 언론, 정치인, 종교, 법조인이 마지막까지 추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은 삶의 가치를 ‘소유’와 ‘지배’에서만 찾기 때문이다. 반면 이순재 선생 같은 참된 장인은 삶의 가치를 ‘소명’과 ‘나눔’에서 찾았다.
배우 카이가 고백했듯, 평생을 무대에서 살아온 대배우가 마지막 파트너인 새파란 후배에게 무대의 영광을 나누고, 끝까지 약속을 지켜낸 모습은 우리에게 인간답게 사는 법, 그리고 아름답게 물러나는 법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교육이었다.
이제 우리는 눈이 먼 ‘한의 정치’, ‘한의 종교‘ ‘한의 언론’ ‘한의 법조인’으로 건달을 일삼는 중독자들에 준엄하게 외쳐야 한다.
“제발 이렇게 살아라.” “이순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