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과 오해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6년 06월 24일(수) 16:16 가+가-

프랑스에서 1943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군중들이 기차역에서 웅성거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짐을 곁에 놓고 서서 긴 여행을 떠나는 차림들이었으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나치스 독일 친위 대원들은 삼엄한 정장 차림으로 여행객들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기차역 승강장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은 죄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독일군이나 나치스 동조 프랑스인들이 집을 강점했기 때문에 쫓겨난 유대인이거나 프랑스의 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반 유대인이 아닌 프랑스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걱정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사실 기차역 승강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이고 친구들이었습니다. 시계를 고치고 팔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 신문팔이 청년, 아름다운 누비이불을 만들던 할머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은 딴 곳으로 이송되고 있었습니다.
기적 소리가 들리기 전부터 연기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검은 매연을 뱉으며 검은 기차가 역에 도착하여 멈출 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이 유대인들을 차 칸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반항도 하지 않았으면 협력적이었습니다. 걱정하는 관객들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지 협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괜찮을 거야, 이 친구들과 이웃들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그들은 보호받고 있으니까’ 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자위를 하고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차 칸마다 프랑스어로 “자선 운송 회사”라는 글씨가 깔끔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착각이라는 것이 수많은 생명을 잃게 되는 불행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우리의 삶에서 착각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래전 미국의 서부 지방에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노름하였는데, 돈을 잃게 되자 격분하여 권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는 곧 체포되어서 재판받았고, 마침내 교수형의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친척과 친구들이 진정서를 사방에 제출하였습니다. 그 마을의 모든 사람이 진정서에 서명하였습니다. 드디어 그 탄원서는 주지사에게 제출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서명이 있는 진정서를 받아서 든 주지사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이 청년을 특사하기로 결심하고 특사장을 만들어 교도소로 찾아갔습니다.
주지사가 사형수 감방에 도착하였을 때, 청년은 전도하러 온 사람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나서 나가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요. 당신 같은 사람을 일곱 사람이나 만나 보았어요.”
“그렇지만 청년! 잠깐만 내 말을 듣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왔네.” 주지사는 간청하였지만, 성이 머리끝까지 솟구친 청년은 소리를 지를 뿐이었습니다. “여보시오!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내쫓도록 하겠소.” “이거 봐 청년! 나는 자네에게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어.”
“내 말을 듣지 못했오? 만일 나가지 않으면 소장을 부르겠소.” “좋아, 할 수 없군!” 주지사는 감방을 나왔습니다.
잠시 후에 소장이 들어왔습니다. “방금 주지사가 자네를 방문하였다네.” “뭐요? 조금 전에 들어왔던 그 사람이 주지사였습니까?” “물론이지, 그는 특사하여 주려고 특사장을 주머니에 가지고 왔는데, 자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는 종이에다, “존경하는 주지사님, 저는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저의 무지한 행동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썼으나 주지사는 “이제는 관심이 없다.”고 회신을 보내왔습니다. 청년의 사형집행일이 왔습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없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나는 내가 사람을 죽인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특사장을 가지고 온 주지사를 몰라보고 그를 내쫓았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오해하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좀 더 신중하게 주시자의 말을 듣게 되면 사형을 면할 수 있었는데 오해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오해하는 큰 실수가 다시는 우리의 삶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