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니체가 본, 한국 정치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6월 23일(화) 16:17 가+가-

대한민국 정치는 ‘거짓말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면 과장일까?. 아침에 폭로된 거짓이 저녁의 새로운 궤변으로 덮이고, 사실(Fact)을 확인하자는 요구는 진영 논리의 칼날에 불온한 공격으로 낙인찍힌다.
이 깊은 불신의 늪에서 2,500년 전 동양의 광야에서 언어의 질서를 부르짖었던 공자(孔子)와 19세기 유럽의 꼭대기에서 위선의 도덕을 망치로 부수었던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를 2026년 한국 정치의 청문회장으로 초빙했다.
공자는 작금의 한국 정치를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을 것이다. 그가 청문회장과 뉴스 화면에서 가장 먼저 목격할 것은 언어의 타락, 즉 ‘교언영색(巧言令色)’의 극치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은 말을 참으로 ‘교묘하게 잘한다’.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로 국민을 위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그들의 행동은 오직 자신과 정파의 안위만을 향해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말을 교묘하게 잘하고 얼굴빛을 보기 좋게 꾸미는 사람 중에는 어진 이가 드물다” 공자의 눈에 비친 한국 정치인은 언어의 포장지만 화려할 뿐, 그 안에는 알맹이가 없는 속 빈 강정들이다.
공자가 한국 정치에 내리는 가장 매서운 처방은 ‘정명(正名)’의 회복이다. 정명이란 ‘이름과 실재를 일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왕은 왕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정치인은 정치인다워야 한다. 지금 한국의 ‘정치(政治)’는 올바름(正)을 뜻하지 않고, 오직 상대방의 파멸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戰爭)’의 동의어가 되었다.
국민의 대변인이라는 자들이 거짓 뉴스를 양산하고, 자신이 한 말을 몇 달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꾸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공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행위,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척 우기는 행위 모두를 사회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거짓으로 보았다.
“정치를 맡으신다면 무엇부터 하겠습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반드시 이름부터 바로잡겠다 (必也正名乎)”고 답했다.
이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국가의 대사가 이뤄지지 않으며, 결국 백성들은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공자는 한국의 대중에게도 채찍을 든다. 정치인의 교묘한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면 ‘시기찰(視其?)’의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만 보지 말고(視),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동기를 파악하며(其), 그 결과에 그가 정말 편안 해하는지 본질을 살피라는 것이다(?). 진영의 논리에 눈이 멀어 거짓말쟁이를 보위하는 대중이 있는 한, 정치인의 교언영색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엄중한 경고다.
공자가 무너진 언어의 도덕을 바로 세우려 한다면, 니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정치의 구조적 본질을 망치로 내리친다. 니체에게 정치인의 거짓말은 단순한 도덕적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을 지배하기 위해 고도로 기획된 ‘권력 의지(Wille zur Macht)’의 필연적 발현이다.
니체는 대한민국의 ‘국가’와 ‘정당’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향해 냉소를 보낸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국가를 ‘모든 냉혹한 괴물 중에서도 가장 냉혹한 괴물’이라 불렀다. “국가는 선과 악에 대한 온갖 언어로 거짓말을 한다. 국가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거짓말이며, 국가가 무엇을 가지고 있던 그것은 훔친 것이다.” 니체의 말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외치는 ‘국민’, ‘정의’, ‘민생’, ‘공정’이라는 숭고한 가치들을 보라. 니체의 관점에서 이 단어들은 진실이 아니다. 대중의 머릿속에 환상을 심어주고, 그 환상을 담보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발명된 ‘지배의 도구(거짓말)’일 뿐이다. 정치인은 본질에서 무대 위의 ‘배우’다. 그들은 정직함을 연기할 뿐이며, 대중은 가혹한 진실보다 자신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위선적 약속에 더 쉽게 선동당한다.
니체는 한국 정치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인 ‘극단적 진영 갈등’의 배후에 있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정확히 꿰뚫어 본다. 그는 이를 ‘르상티망(Ressentiment, 원한과 시기·질투)’의 정치학이라 부를 것이다. 공자와 니체는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철학자들이다. 공자는 붕괴한 도덕을 복원하여 ‘참된 언어(正名)’의 시대를 열고자 했다.
정치인의 거짓말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중이 더 그 거짓말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진영의 안락한 위로 대신 가혹한 진실을 직시할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한국 정치는 말의 무덤을 파헤치고 인간을 위한 본연의 길로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두 거장의 채찍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저 냉혹한 괴물들이 파는 달콤한 거짓의 노예로 남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