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노래한 바윗돌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6월 16일(화) 16:18 가+가-

정오차 뮤지션의 「바윗돌」은 단지 한편의 대학가요제가 아니다. 1980년대 초, 말할 수 없는 시대에, 대신 말해 주는 노래였다.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끝내 한 번 굴러 보려는 마음의 노래였다. 이 곡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멜로디의 힘만이 아니다. 노래가 태어난 자리 자체가 이미 비극과 저항의 긴장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1981년은 광주의 상처가 아직 생생하던 때였다. 사회는 계엄과 검열의 그림자 아래 있었고, 젊은 세대는 분노와 침묵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방송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특히 노래는 더 엄격한 감시의 대상이었다.
‘찬비 맞으며 눈물만 흘리고/하얀 눈 맞으며 아픔만 달래는 바윗돌//세상만사 야속 타고 주저앉아 있을쏘냐/어이 타고 이내 청춘 세월 속에 묻힐쏘냐//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한 맺힌 내 청춘 부서지고 부서져도//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저 하늘 끝에서 이 세상 웃어 보자 하하//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저 하늘 끝에서 만 세상 웃어 보자/아~~아~아~아~ 바윗돌~~~//안개 낀 아침에는 고독을 삼키고/바람 부는 날에도 설운 맘 달래는 바윗돌//세상만사 야속타고 주저앉아 있을쏘냐/어이타고 이내 청춘 세월 속에 묻힐쏘냐//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한 맺힌 내 청춘 부서지고 부서져도//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저 하늘 끝에서 이 세상 웃어 보자 하하//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저 하늘 끝에서 만 세상 웃어 보자/아~~아~아~아~ 바윗돌~~~’ 「바윗돌」 가사다.
노래는 감정을 모으고 사람을 모으는 힘을 지녔다. 권력은 그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한 시대의 숨결이 막혀 있을 때, 가장 먼저 막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노래였다.
「바윗돌」은 그런 현실에 항거다.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물이나 바람이 아니라, 단단하고 무거운 돌이다. 바윗돌은 원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 돌에 “굴러라”라고 말한다. 그 한마디가 중요하다.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이게 하려는 의지, 굳어버린 시간을 흔들어 보려는 간절함이 거기에 있다. 시대가 사람을 눌러도, 바윗돌처럼 굳어진 절망이 있어도, 언젠가 굴러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 상징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버티는 자의 언어에 가깝다. 더욱이 이 노래는 개인적 상실과 시대적 아픔이 포개진 자리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울림이 크다. 누군가를 잃은 뒤 남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그 상실을 설명할 말조차 막혀 버릴 때, 노래는 가장 오래 남는 증언이 된다.
그래서 「바윗돌」은 특정 사건의 직접적 구호가 아니어도, 그 시대를 관통한 애도와 저항의 정서를 품는다. 겉으로는 서정적인데, 속으로는 아프다. 단정한 선율 아래에 억눌린 역사와 젊은 분노가 배어 있다. 대학가요제라는 무대도 중요하다. 대학가요제는 젊은 감수성과 새로운 언어가 세상으로 나오는 통로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그 젊음마저 국가의 통제 아래 있어야 했다. 그러니 「바윗돌」이 대상까지 받은 뒤 금지곡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시대의 모순을 보여 준다. 환호는 허락되었지만, 해석은 금지되었다. 상은 주었지만, 그 노래가 담은 뜻은 두려워했다. 이것이 바로 당시의 엄혹한 현실이었다. 노래는 불리도록 허용되면서도, 그 노래가 정말 무엇을 말하는지는 봉쇄되곤 했다. 이 곡의 비화는 그래서 단순한 ‘실화’가 아니라 검열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 노래가 탄생하고, 인정받고, 곧바로 지워지는 과정은 그 시대가 예술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금지와 억압은 노래의 생명을 끝내지 못했다. 오히려 금지되었기에 더 많은 사람이 기억했다. 불린 자리보다, 불리지 못한 자리가 더 크게 남았다. 사라지게 하려는 힘이 되레 기억을 만들었다.
오늘 「바윗돌」을 다시 들으면, 그것은 옛 대학생들의 감상적인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가 어떻게 청춘의 목소리를 두려워했는지 보여 주는 기록이며, 동시에 그 두려움을 뚫고 나가려 했던 작은 용기의 증거다. 노래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어도 된다. 다만 굴러가야 할 돌이 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으면 된다.
「바윗돌」은 바로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증명한다. 이 노래가 오래 남는 이유는 분명하다. 말할 수 없는 시대에, 말 대신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래는 금지되었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바윗돌은 쉽게 굴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무게만큼 오래 간다. 「바윗돌」은 바로 그런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