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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흔적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6년 06월 10일(수) 16:13 가+가-
토스카니니하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명성 있던 지휘자입니다.
그는 원래 첼로 연주자로서 심한 근시로 인해 연주 중에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주 때마다 연주할 악보를 모두 외워서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주회를 앞두고 그 악단의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단원중에 누군가에게 지휘를 대신 부탁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때 악보를 모두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선발되어서 임시 지휘를 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세계적 대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만약 토스카니니가 그토록 시력이 나쁘지 않았다면 유럽의 한 첼로 연주자에 불과했었을 것입니다.
시력이 나빠서 악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악보를 모두 외울 수가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세계적인 지휘자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괴롭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더 큰 능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토스카니니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해서 불평하지 말자,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인간은 좋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아니했는가. 눈물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자, 임계점(critical point)이란 물이 99도까지는 변화가 없다가 100도가 되는 순간 끓어 수증기로 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떠돌이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빈민 농촌에서 자란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워 존 밀턴과 함께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는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천로역정’의 작가 존 버니언(1628-1688)입니다. 그는 인생이 꽃필 33세 때 종교재판 때문에 투옥돼 12년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에 가장 빛나는 문학의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천로역정’은 이때 쓰인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렇게 찾아다녔던 보물을 고통의 감옥 안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환란은 성장의 법칙이요 우리의 인생은 이 세계의 폭풍우와 긴장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뷔엔나의 어떤 유명한 음악 교사가 자기 문하에서 사사하는 제자 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참으로 훌륭한 가수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노래에는 무엇인지 모르게 한 가지 부족한 느낌이 있습니다. 인생은 지금까지 그 여자에게 너무 친절하였던 것 같습니다. 즉, 그녀의 노래에는 고통을 아는 영혼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무엇인가가 그 여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만 하면 그 여자는 유럽에서 제일가는 가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Broken heart”에서만 참다운 음악이나 예술이 창조된다는 뜻입니다.”
서양 격언에 “냇물에서 돌들을 치워 버리면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과연 마음대로 안 되는 반대나 저항이나 방해물이 있어야 우리의 영혼 속에서 고뇌를 통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환란이란 것은 물론 그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연단을 받으면 마침내 우리의 인격 안에서 미를 창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란을 선용하여 우리의 인격 건설의 자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나치에 처형된 (1945) 본회퍼는 옥중서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령에 따라 고통받는 것은 자의로 고통받는 것보다 쉽습니다. 여럿이 함께 고통받는 것은 혼자 고통받는 것보다 쉽습니다.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것이 정신적으로 받는 것보다 쉽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은 자의로 혼자서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받으셨던 사람들입니다.”
아서왕(King Arther)은 기사들이 일선에서 돌아오면 으레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대는 희생의 흔적을 지니고 왔는가?” 전쟁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왔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흔적이 있는 기사는 왕의 만찬에 동참했고 없으면 다시 일선으로 보냈습니다.
고통에는 반드시 뜻이 있습니다.
전에는 몰랐으나 고통을 당한 뒤 비로소 자산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고통당할 때는 스스로를 축소 지향적으로 여기지 말라.
고통의 상황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고통 너머의 절대자를 의지하라. 고통의 때는 새로워질 수 있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입니다. 인간의 절망은 복된 섭리의 시작입니다.
고통의 때에 서로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은 새로운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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