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의 위대함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5월 26일(화) 16:17 가+가-

정치인의 몸짓은 때로 수백 페이지의 정책 자료집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미국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정치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그의 유려한 연설을 먼저 기억하곤 한다. 그의 정치를 진정으로 완성한 상표는 화려한 수사가 아닌, 바로 그의 ‘터치(Touch)’였다. 백악관 청소부와 주먹을 맞부딪치고(Fist bump), 자신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든 흑인 꼬마에게 고개를 숙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게 해주던 장면은 전 세계인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오바마의 터치는 단순한 신체적 접촉을 넘어선, 인간을 향한 깊은 존중이자 사랑의 표현이었다. 심리학과 아동발달학에서는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인간은 타인과 따뜻한 접촉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다. 학교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무기력에 빠진 아이, 세상에 마음을 닫아걸어 성적이 떨어지던 아이도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 한 번에 눈빛이 달라진다.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는 선생님의 터치는 아이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단다. 너는 소중한 존재야.” 이 작은 관심의 터치는 아이들의 뇌에서 옥시토신을 분비시키고, 불안을 낮추며, 마침내 스스로 해내겠다는 희망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교사의 긍정적인 신체적·정서적 교감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자존감을 눈에 띄게 향상한다는 연구 결과는 무수히 많다. 오바마가 대중을 향해 뻗었던 손길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그는 소외된 이들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들에게 ‘당신도 이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라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말과 글은 명확하지만, 때로는 그 명확함 때문에 차갑고 딱딱해진다. 반면 터치는 가장 함축적이면서도 가장 풍부한 감정을 담아내는 ‘행동으로 쓰는 시(詩)’다.
시가 짧은 언어 속에 거대한 우주와 깊은 슬픔, 환희를 압축해 담아내듯, 터치 한 번에는 수만 가지 감정이 오롯이 녹아든다. 위로의 말 대신 가만히 얹는 손길은 슬픔을 나누는 가장 깊은 시어가 된다. 백언(百言)의 격려보다 등을 토닥이는 한 번의 손짓이 낙심한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오바마가 슬픔에 잠긴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 가족을 안아줄 때, 그 포옹은 세상의 그 어떤 애도사보다 슬프고 아름다운 한 편의 시였다. 그것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연결되는 가장 순수한 소통의 방식이었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영혼과 감정을 가시적인 형태로 창조해내는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얼어붙은 사회를 녹이는 터치는 고도의 예술적 행위와 같다.
훌륭한 화가가 캔버스 위에 정교한 붓질로 생명을 불어넣듯, 오바마는 인간관계라는 캔버스 위에 ‘터치’라는 붓으로 연대와 통합의 예술을 그려냈다. 그의 터치에는 가식이 없었기에 대중은 그것을 정치적 쇼가 아닌, 진정성 있는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였다.
권위라는 딱딱한 외피를 벗어던지고,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손을 내미는 행위 자체가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감동의 예술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디지털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인간적인 ‘터치’는 사라진 차가운 사회다.
화면 속의 좋아요와 댓글은 넘쳐나지만,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진짜 접촉은 드물어졌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은 더 외롭고, 아이들은 더 고립되어 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바마가 보여주었던 그 따뜻한 터치의 정치, 터치의 교육, 터치의 삶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내 아이의 어깨를 지시와 훈계 대신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것, 지친 동료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는 것, 낙담한 이웃에게 따뜻한 눈빛과 손길을 건네는 것. 이 작은 행동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거대한 시가 되고 예술이 된다. 터치는 사랑이고 관심이며,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다.
‘바람이 머리칼을 쓸어넘길 때/손끝에 머무는 아스라한 기억,/말없이 감싸 안은 그 따스함에//얼어붙은 마음 사르르 녹아드네./눈빛으로 나누는 무언의 약속,//가만히 맞잡은 손의 온기’
<사랑의 터치> 최창일 시
오바마의 터치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처럼, 이제 우리도 서로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메마른 세상에 새로운 희망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할 때다. 터치는 위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