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노래가 살아 있는 한, 그날의 광주는 지지 않는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5월 19일(화) 16:28 가+가-

5월 18일이 되면 대한민국 전체를 나지막이, 단단하게 울리는 멜로디가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특별한 가창 기교 없이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곡,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는 단순한 기념곡이나 민중가요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DNA에 각인된 역사적 상징물이다. 우리는 왜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히는가. 1980년 5월, 그 뜨거웠던 열흘의 광주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칼럼은 그날의 핏빛 흔적과 그 흔적 위에서 피어난 노래 한 곡에 담긴 숭고한 가치를 본다.
1980년 5월 18일, 그날의 광주가 마주했던 1980년 봄, 대한민국은 잔혹한 겨울의 끝에서 ‘서울의 봄’이라는 짧은 희망을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 군부 세력은 비상계엄 확대를 통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권력을 찬탈하려 했다. 이에 정면으로 저항한 곳이 바로 빛고을, 광주였다. 5월 18일 아침,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터져 나온 학생들의 외침은 신군부가 투입한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폭력에 짓밟혔다. 계엄군의 진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혹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대검의 칼날과 곤봉 세례 속에서, 광주 시민들은 공포에 질리기보다 서로의 손을 잡는 편을 택했다. 무고한 이웃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을 시작했고, ‘시민군’이 되었다. 고립된 도시 속에서 약탈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쥐여주었고, 병원 앞에는 부상자들을 위한 헌혈의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마지막 시민군의 총성이 멎으며 외로운 항쟁은 표면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도청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계엄군 진압 직전의 마지막 가로방송은,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에 거대한 부채감과 책임감으로 남았다. 영혼결혼식에서 피어난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항쟁이 끝난 후인 1982년,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비밀리에 제작되었다. 이 노래의 탄생 이면에는 두 남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혼결혼식이 있었다. 주인공은 5·18 당시 시민수습대책위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 열사, 그리고 그보다 앞서 1978년 노동운동을 하다가 숨진 박기순 열사다.
두 사람의 넋을 기리기 위한 영혼결혼식에 헌정할 음악극 <넋풀이>의 곡으로 이 노래가 만들어졌다. 작사는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 일부를 소설가 황석영이 개작. 작곡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이 녹음. 황석영의 자택에서 단속을 피해 담요로 창문을 가린 채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이렇게 태어난 노래는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물밑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삼엄한 전두환 정권의 독재 치하에서 이 노래를 부르거나 소지하는 것은 곧 구속을 의미했다. 하지만 탄압이 거세질수록 노래의 생명력은 더욱 끈질겨졌다. 1987년 6월 항쟁의 광장에서도,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현장에서도 늘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슬픔을 용기로 바꾸는 연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닌 가장 큰 위대함은 ‘슬픔의 승화’에 있다. 추모곡들이 떠난 이에 대한 눈물과 그리움에 머무는 반면, 이 노래는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투쟁과 결의를 담고 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이 마지막 구절은 1980년 5월 도청에서 쓰러져 간 이들이 살아남은 우리에게 건네는 엄숙한 명령이자 부탁이다. ‘산 자’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죽은 자들의 몫까지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이다. 노래는 국경을 넘어 아시아 전역의 민주화 운동 현장(홍콩, 미얀마, 대만 등)에서도 번역되어 불리고 있다. 억압받는 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연대의 힘을 발휘하는, 인류 보편의 ‘자유의 찬가’가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5·18과 이 노래가 던지는 과제다. 오늘날 5·18 민주화운동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국가 기념식에서 제창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외형적인 명예 회복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과제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일부 세력에 의한 끊임없는 역사 왜곡과 폄훼, 5·18을 특정 지역만의 기억으로 고립시키려는 시도는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가 5월의 광주를 끊임없이 기억하고 노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5·18은 결코 과거에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숭고한 저항 정신이자, 위기 속에서 나보다 이웃을 먼저 챙겼던 성숙한 시민의식의 실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