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떼창’, 세계 어느 공연에도 찾을 수 없는 한국만의 공연 미학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5월 12일(화) 16:28 가+가-
‘떼창’이라는 단어는 국립국어원 사전에 등재될 법한 문화적 고유명사를 넘어, 전 세계 뮤지션들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유혹이 되었다.
클래식 공연장의 정적이나 재즈 클럽의 가벼운 추임새에 익숙한 서구적 관점에서 볼 때, 수만 명의 관객이 아티스트의 노래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르는 한국의 공연 풍경은 경이로움을 넘어 일종의 ‘종교적 체험’에 가깝다는 찬사를 받는다.
단순히 소음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화음으로 승화된 이 떼창 문화는 한국인의 정서적 DNA와 현대적 팬덤 문화가 만나 탄생한 독창적인 예술적 양식이다.
한국의 떼창 문화가 세계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데에는 이른바 ‘떼창에 감동한 뮤지션들의 실화’가 큰 몫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2년 내한했던 힙합의 제왕 에미넘(Eminem) 이다.
평소 냉소적이고 감정 표현이 인색하기로 유명한 그가 한국 관객들의 폭발적인 떼창에 감동하여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보인 사건은 전 세계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일본 공연에서 미적지근한 반응에 실망했던 그가 한국 관객들의 ‘미친 듯한’ 화답에 무장해제된 순간은, 한국의 떼창이 아티스트에게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피드백임을 증명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또 다른 사례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다. 2017년 첫 내한 당시, 대표곡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의 전주가 흐르자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의 관객은 약속이라도 한 듯 코러스 부분을 허밍으로 채우며 거대한 성가대를 방불케 했다. 보컬 크리스 마틴은 아예 노래를 멈추고 무대 바닥에 누워 관객들의 목소리를 온몸으로 감상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는 이후 인터뷰에서 “인생 최고의 관객”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2025년 다시 한국을 찾아 30만 관객과 재회하며 그 감동의 서사를 이어갔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한국인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 마당극이나 판소리에서 관객이 ‘얼씨구’, ‘절씨구’ 하며 추임새를 넣어 판을 완성했듯, 현대의 한국 관객들은 공연을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만드는 것’으로 인식한다. 아티스트가 주인공이라면 관객은 최고의 조연이자 화음을 완성하는 세션인 셈이다.
이는 한국인 특유의 ‘정(情)’의 표현이기도 하다. 먼 길을 찾아온 손님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는 것처럼, 한국 팬들은 아티스트의 가사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을 아티스트에 대한 예의이자 사랑의 증표로 여긴다.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가 “한국 팬들은 유럽에서 아일랜드 사람들과 닮았다. 위대한 정신을 가졌고, 에너지적으로 미친 사람들 같다”라고 평한 것은 한국인의 뜨거운 정서적 깊이를 꿰뚫어 본 통찰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떼창은 개인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수만 명의 낯선 이들과 목소리를 합치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는 집단의 에너지를 투사 받아 확장된다. 일상의 억눌린 감정이 합창의 음압 속에 녹아들며 집단적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떼창은 단순한 관람 매너를 넘어 하나의 ‘문화 수출품’이 되었다. 해외 K-POP 공연장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어 가사를 떼창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감정의 순수한 교류를 가능케 하는 힘, 그것이 바로 떼창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다.
무대 위 조명이 꺼지고 아티스트가 떠난 뒤에도 관객들의 귓가에 맴도는 것은 자신이 내뱉은, 그리고 함께 내뱉은 그 거대한 공명이다.
떼창은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도 거대한 환대이며, 우리가 여전히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가장 역동적인 증거다. 그 역동의 떼창은 오늘도 방탄 소년단을 통해 세계화로 나아가고 있다.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