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창고를 채울 때
김평석 전)광주시의회 전문위원.광주시의회 입법평가위원
작성 : 2026년 04월 19일(일) 15:53 가+가-

요즘 사람들은 안다. 전쟁은 멀리서 벌어져도 물가는 바로 우리 집 앞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뉴스 화면 속 포성보다 먼저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주유소 가격표의 숫자이고, 장바구니 무게이며, 공장과 병원의 공급 불안이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는 전쟁 충격에 대응해 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비축유 공동 방출에 나섰고, 우리나라의 3월 수입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8.4% 올라 3년여 만의 최대 폭 상승을 기록했다.
정부가 4월 15일부터 6월 30일까지 주요 석유화학 기초원료의 사재기를 금지한 것도, 이 불안이 단순한 심리 차원이 아니라 생활경제 전반의 문제로 번졌기 때문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석유가 단지 연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석유는 플라스틱과 포장재, 화학원료와 의료소모품으로 바뀌어 우리의 일상을 떠받친다. 실제로 아시아에서는 플라스틱 포장재 부족이 나타나고 있고, 일부 기업은 종이 포장재로 급히 전환하고 있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충격은 기름값에서 끝나지 않고, 생활용품과 식품 포장, 산업 부품과 의료 현장으로 연쇄적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이 대목에서 사재기를 오로지 이기주의만으로 설명하면 절반만 맞는다. 물론 자기 몫을 넘어서 타인의 몫까지 움켜쥐는 행동은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대개 불안과 공포가 있다. 지금 사두지 않으면 내일은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남보다 늦으면 손해 볼 것이라는 초조함이 판단을 밀어내고 반응을 앞세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말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은 이런 순간에 더욱 실감난다. 그는 이름 없는 공포가 사람을 마비시킨다고 보았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공포가 번지면 필요한 물건보다 먼저 불안이 바닥난다.
동양의 고전은 오래전부터 이런 인간의 약한 마음을 경계해 왔다. 공자는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했다. 이 말은 이익을 죄악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익 앞에서도 먼저 옳고 그름을 물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 공자는 “작은 이익을 좇으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눈앞의 작은 이득을 챙기려다 더 큰 신뢰와 질서를 잃지 말라는 경계다. 사재기가 바로 그렇다. 한 사람에게는 대비일지 몰라도, 사회 전체로는 더 큰 부족과 더 깊은 불신을 부른다.
맹자는 이보다 더 직설적이었다. “왕이 어찌 꼭 이익만 말하십니까”라고 묻고, 위와 아래가 모두 이익만 다투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경고했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다. 정부가 민생보다 숫자만 보고, 기업이 공급 불안을 틈타 폭리를 좇고, 시민이 공동체보다 내 집 창고부터 채우려 든다면 위기는 밖에서 온 충격으로 끝나지 않는다. 안에서부터 더 커진다. 위기는 대개 부족해서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믿지 못해서 커진다.
노자의 가르침도 지금에 꼭 맞는다. 노자는 “족함을 알고 멈출 줄 알면 오래간다”고 했고, 또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데 보탠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의 세상은 종종 그 반대로 움직인다. 부족한 곳에서 더 빼앗아 이미 가진 곳에 더 얹어준다. 위기 때의 사재기와 편승 인상이 바로 그렇다. 결국 가장 먼저 다치는 사람은 더 약하고, 더 불안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절제는 개인의 미덕에 그치지 않는다. 공동체를 지키는 사회적 책임이 된다.
서양의 가르침도 다르지 않다. 존 던은 “그 누구도 섬이 아니다”라고 했다. 사람은 홀로 떨어져 살 수 없는 존재이며, 누군가의 상처와 결핍은 결국 내 삶과도 이어진다는 뜻이다. 전쟁과 공급 불안의 시대에는 이 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나 하나만 안전하면 된다는 생각은 잠깐의 위안은 줄지 몰라도 오래 버티는 해법은 되지 못한다. 공동체가 흔들리면 결국 개인의 안전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영웅심이 아니다. 필요한 만큼만 사는 절제, 불안을 돈벌이 기회로 삼지 않는 양심, 불편과 손해를 조금 감수하더라도 약한 이웃의 몫을 먼저 생각하는 상식이다. 위기 앞에서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흔들림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이다. 공포를 핑계로 이기심을 정당화할 것인가, 아니면 불안을 이겨내며 서로를 붙들 것인가.
전쟁은 바깥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공동체의 붕괴는 안에서 시작된다. 이런 때일수록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단지 유가의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 앞에서 사람의 도리를 잊어버리는 일이다. 창고를 채우는 손보다 먼저 채워야 할 것은 마음의 균형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비축이 아니라, 더 많은 신뢰와 절제,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라는 오래된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