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태극(太極)의 펄럭임에서 시중(時中)의 길을 제시하다
김경호 박정훈 대령 변호사
작성 : 2026년 04월 12일(일) 16:17 가+가-

대한민국 태극기를 가만히 응시해 본다. 태극기는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대자연의 교감과 우주의 순환을 품은 거대한 생명체다.
건(乾)과 곤(坤)이 하늘과 땅의 틀을 잡고, 그 안에서 만물이 숨을 쉰다. 천지가 곧 하나의 유기체이니, 자연을 오염시키는 것은 곧 인간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태극의 심장에는 물을 상징하는 감(坎)과 불을 상징하는 리(離)가 역동하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려는 물을 위에 두고, 위로 타오르려는 불을 아래에 두어 끊임없는 섞임과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태극이 품은 진정한 세상의 이치다.
우주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 쉼 없는 변화 속에서 찰나의 절묘한 균형, 즉 시중(時中)을 찾아내어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자가 인간세 진정한 리더다. 한때의 시중으로 얻은 영광에 취해 고인 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또한 때가 되면 성공했던 실패했던 후대에게 그 정신을 물려주며 깨끗이 물러나는 것이 태극과 중용이 가르치는 지혜다.
그러나 작금의 거리에 펄럭이는 현실의 태극기는 어떠한가. 태극의 깊고 역동적인 뜻은 까맣게 잊힌 채, 소위 학벌 엘리트 카르텔과 친일 매파 자본 기득권의 탐욕을 가리는 초라한 가림막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변화의 감각은 무뎌진 지 오래며, 오로지 돈과 권력으로 사람의 이기심을 자극해 자리를 보전하려는 자들이 태극기를 흔든다. 맹목적인 안보 팔이와 사대주의에 젖어 이스라엘 국기와 성조기를 곁들여 흔드는 그 기괴한 풍경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참담함과 역겨움을 자아낼 뿐이다. 이들은 시중(時中) 할 줄 모르는 것들이 시중(時中)을 소유하려 드는 오만한 속물들이다.
이러한 비루한 시대착오적 풍경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준 세계사적 결기는 참으로 각별한 위로와 자긍심으로 다가온다. 미국의 절대적 비호 아래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반인륜적 학살을 향해 제네바 협약 위반을 당당히 꾸짖은 그의 일갈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굴종의 사대주의를 걷어낸 고조선의 자주적 기백이자, 쉼 없이 평화와 인간의 도리를 찾아가는 태극의 ‘시중(時中)’이 세계 보편의 양심으로 발현된 쾌거다. 강자의 폭력에 눈감지 않고 인류애를 외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주권국의 품격이다.
끝으로, 생지옥을 만들고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에게 뼈아픈 진실을 전하며 글을 맺는다. 네타냐후, 당신은 홀로코스트의 가장 참혹한 배신자다.
“다시는 없어야 한다(Never Again).” 당신 민족의 그 피맺힌 절규를, 당신은 타국 민간인의 피로 잔인하게 지워버렸다. 당신 민족이 겪은 비극을 볼모 삼아 레바논과 가자지구에서 또 다른 학살을 자행하는 당신은,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맹목적인 도살자에 불과하다. 피해자의 역사가 살인자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자는 국제법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바로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박혀 있다. 스스로의 상처로 잉태된 법을 총구로 갈기갈기 찢는 당신의 행태는, 가스실에서 스러져간 당신의 선조들을 두 번 죽이는 최악의 모독이다.
당장 그 끔찍한 포성을 멈추라. 비극에서 살아남은 자가 스스로 비극의 창조자가 될 때, 역사는 그를 가장 수치스러운 괴물로 기록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