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야 할 길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6년 03월 25일(수) 16:19 가+가-

인간의 생활에는 제각기 걸어야 할 길이 있습니다. 스승은 사도를 걸어야 하고, 가정 주부는 부도를 걸어야 하고 신사에게는 신사도가 있고 상업을 하는 사람은 상도가 있고 예술가에게는 예도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가 가야 할 길을 바로 걸어야 합니다. 현대문명의 척도는 그 나라의 길을 보아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 문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중국이 오늘날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중국인들이 길을 내는 대신에 성벽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오늘날의 미국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문명을 이룩한 나라가 되기까지는 미국인들이 고속도로와 철도를 많이 건설했기 때문에 그처럼 발달한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고속도로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랭킹 제9위의 고속도로 국가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전 세계에서 최소공비, 최단시일에 시공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뚫리고 11년 동안 보수비가 건설비를 웃돌았다고 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어린이 동화에는 체셔 캣이라는 말재주가 좋고 꾀가 많은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습니다. 갈림길에서 체셔 캣을 만납니다. “어떤 길로 가야 하나?” 체셔 캣은 앨리스에게 되묻습니다. “어디에 가는데?” 앨리스는 “모른다”라고 대답합니다. 체셔 캣은 웃으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 데도 갈 수 없어”라고 대답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온 길이 있고 갈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신이 정하시는 길이다. 그 길은 철새의 항로보다 더 정확합니다. 그 길을 알아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매해 미식축구를 하다가 2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만 명이 부상을 당한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발표되었습니다. 게다가 희생자의 40%는 15~19세의 청소년들입니다.
미식축구는 워낙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튼튼한 헬멧과 여러 가지 부상 방지용 장비를 갖추고 경기에 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비가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상대 선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줄 때도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방비 도구란 이렇게 하찮은 것입니다.
눈 덮인 알프스산맥을 등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입니다. 다른 장비나 기구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길잡이가 없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되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산맥을 등정하는 데도 길잡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암벽에 부딪혔을 때, 험한 길을 만났거나 길을 잃었을 때, 위기 상황이 발생한 그곳의 지리를 잘 알아서 올바르게 대처할 줄 아는 좋은 길잡이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시련이 닥쳤을 때, 인생의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할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좀 더 좋은 길잡이를 만났더라면 훨씬 고생을 덜 했을 텐데, 좀 더 일찍 바르게 사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좋은 길잡이를 제대로 만난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인생의 길잡이가 있는지요? 미국 동부에 혹심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기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 채 거북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승객 중 갓난아기를 안은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내릴 역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잔뜩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내릴 역을 가르쳐 드리지요” 기차는 눈보라를 뚫고 서서히 달렸습니다. 기차가 어느 역에 멈추어 서자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내리십시오” 여인은 신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갓난아기를 안고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신사는 머리를 감싸 안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여인이 내려야 할 역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신사는 기차가 잠시 멈춘 줄도 모르고 여인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준 것이었습니다. 이튿날 여인이 내린 철길 옆에는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을 한 눈덩이가 발견됐습니다.
여인은 철길에서 아기를 안은 채 얼어죽은 것입니다. 사람에게 길을 잘못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비극적인가. 하물며 영혼을 잘못 인도한다면 어찌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