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가사 속 시적 환유의 힘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3월 17일(화) 16:20 가+가-

한국 대중가요는 오랜 세월 은유(隱喩)와 환유(換喩)를 통해 직설을 피해 감정을 압축해왔다. 1970년대 최진희의 ‘꼬마 인형’에서 뱃속 아기를 인형으로 상징한 것이 사례다. 2026년 순위 1위 곡들 역시 일상적 이미지를 빌려 현대인의 복잡한 심리를 포착한다.
현재 멜론·지니 등 음원 순위와 SBS 인기 가요에서 강세를 보이는 우즈(WOODZ)의 ‘드로잉(Drowning)’, 화사의 ‘Good Goodbye’, 르 세라핌(LE SSERAFIM) feat. 제이홉(j-hope)의 ‘스파게티(SPAGHETTI)’를 중심으로 환유 표현을 분석하면, 이 곡들은 단순한 히트곡을 넘어 시대의 정서를 문학적으로 증언한다.
먼저 우즈의 ‘드로잉’가사에서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는 물과 익사라는 인접 이미지를 통해 우울증과 감정적 압박을 환유한다. 환유(metonymy)는 부분이나 인접 요소를 전체로 대체하는 수사법을 말한다. 여기서 ‘물결’은 외부 스트레스(사회적 기대, 연애 갈등)를 상징하며 화자의 내면 혼란 전체를 압축한다. 물은 고대 문학부터 감정의 불안정을 나타내는 보편적 모티프지만, 우즈는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했다.
팬데믹 이후 지속된 불안 장애 논의 속에서 이 가사는 “숨이 막혀”처럼 신체적 호흡 곤란을 빌려 정신적 질식감을 전달한다. 인기순위 1위 역주행 과정에서 청년층 공감을 얻은 이유는 바로 이 환유의 생생함 때문이다. 물속 허우적거림은 K팝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비트와 대비되며, 듣는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화사의 ‘Good Goodbye’(방송 1위 다수 확보)에서는 이별 인사 자체가 핵심 환유다. “잘 가, good goodbye” 중 ‘goodbye’는 작별의 말소리(부분)를 빌려 전체 관계의 종결을 상징한다. ‘good’라는 긍정적 형용사가 붙음으로써 단순 이별이 아닌 ‘건전한 해탈’로 승화된다. 이는 화사의 솔로 활동 주제인 자기 사랑(self-love)과 맞물린다. 환유는 인접성에 기반을 두는데, 여기서 작별 인사는 관계의 마지막 순간(인접 이미지)을 통해 아픔 속 성장 전체를 대변한다. 2026년 페미니즘 팝 유행 속에서 이 표현은 “너 없이도 good”처럼 자립을 강조하며 공감을 자아낸다. 월간 순위 1위에 오른 배경에는 이런 문학적 깊이가 있으며, 화사는 인터뷰에서 “작별도 아름다울 수 있다”라고 밝혀 환유의 의도를 확인했다.
르세라핌(LE SSERAFIM) feat. j-hope의 ‘SPAGHETTI’(음반·스트리밍 동시 상위권)는 가장 일상적인 환유로 눈길을 끈다. “스파게티처럼 엉킨 우리”에서 면 요리(스파게티)가 복잡한 연애 관계를 인접 적으로 대신한다. 포크(fork)로 엉키는 면 줄기는 얽힌 감정선 전체를 생생히 환유하며, 먹는 방송 문화가 만연한 2026년 청중에게 직관적이다. 제이홉(j-hope)의 랩 분야 “풀리지 않는 매듭”은 이 이미지를 강화해, 사랑의 ‘엉킴’을 음식이라는 친근한 사물로 풀어낸다. 환유의 힘은 추상적 감정을 구체화하는 데 있다. K팝 걸그룹의 글로벌 히트 공식(댄스+캐치프레이즈)에 문학성을 더한 사례로, 순위 1위 경쟁에서 음반 판매량으로 경쟁했다.
이 세 곡의 환유는 공통으로 현대인의 ‘연결성과 단절’을 다룬다. ‘드로잉’의 물은 과도한 연결(소셜 미디어, 관계 압박)로 인한 익사, ‘Good Goodbye’의 작별은 단절의 긍정화, ‘SPAGHETTI’의 면은 풀리지 않는 연결망을 상징한다. 2026년 가요계는 AI 작곡 도입과 숏폼 콘텐츠(릴스·틱톡) 영향으로 가사가 더 압축됐지만, 환유는 여전히 깊이를 보장한다. 나무위키 ‘2026년 가요계’ 문서에 따르면, 이 곡들은 1~3월 종합 차트 상위 5위를 독차지하며 ‘환유 팝’ 경향을 주도했다. 문학적으로 환유는 로맨틱 주의 시에서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한국 가요에서는 1980년대 심수봉 ‘그때 그 사람’의 “병실에 핀 기타”처럼 장소·사물이 추억 전체를 대체했다. 2026년 히트곡들은 이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했다. 물·작별·스파게티라는 일상 이미지는 청중이 즉각 떠올릴 수 있는 인접 요소로, 스트리밍 시대의 짧은 주의 집중력을 공략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고독, 자립, 관계 피로라는 보편적 주제가 숨어 있다. 이러한 환유는 가요를 단순 소비재가 아닌 문학 텍스트로 승격시킨다. 순위 1위는 대중의 무의식을 반영하는데, 2026년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 이슈(우울증 증가율 15%↑)와 맞물려 ‘Drowning’이 폭발한 건 우연이 아니다. 화사의 ‘Good Goodbye’는 #me too 후유증 속 여성 자아 성장의 상징으로, ‘SPAGHETTI’는 Z세대 다중관계(폴리아모리) 논의를 환유한다. 언젠가 이 가사들은 문학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른다.
대중가요의 환유는 시대를 기록하는 캡슐이다. 2026년 1위 곡들은 물에 빠진 우리, 잘 가는 우리, 엉킨 우리를 통해 포스트 범유행 세대의 아픔을 압축했다. 청취자는 비트에 몸을 맡기지만, 가사는 마음에 스며든다. 다음 히트곡이 어떤 환유로 우리를 사로잡을지 기대된다. 노벨상의 밥 딜런 노래가 시듯, 우리의 대중가요는 상당한 깊이의 시적 은유 환유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