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행복을 불러 온다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6년 03월 11일(수) 16:29 가+가-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으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하였고, 빌헬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감사가 제일 많은 나라가 어디일까요? 최고 맞짱을 뜨는 미국 중국이 아닌 국민소득 100불 미만이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아라고 합니다. 감사와 행복은 소유에 많고 적음에 비례하기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비례한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만큼 인생은 행복해지고 풍요로워집니다. 위대한 찬송 작가인 화니 제인 크로스비는 1820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생후 6주가 되었을 때 눈병을 앓았습니다. 그때 마침 마을의 의사가 다른 지역에 가고 없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딸의 눈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치료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정식 의학 교육을 받지 않았던 그의 잘못된 시술로 그녀의 각막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평생 앞을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고통이 찾아왔지만, 그녀의 곁에는 믿음의 가족이 있었습니다. 특히 외할머니는 그녀의 눈이 되어 주고 그녀가 믿음의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녀는 시력을 잃었지만,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글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쓴 찬송시만 약 9천 편에 달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중에 그녀가 작사한 찬송이 많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나의 영원하신 기업’ 등의 주옥같은 찬송들입니다.
누군가 그녀에게 “당신이 처한 상황은 절망할 수밖에 없고,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감사의 조건들은 아주 많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조건을 뛰어넘는 본질적인 감사가 우리의 영혼 속에서 우러나와야 하겠습니다.
비교 의식이 역시 감사를 방해하는 적입니다.
비교 의식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욕심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합니다. 상대방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우월감으로 교만해지든지, 아니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기 비하에 매몰되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에도 감사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교 의식은 우리를 상대적 빈곤감에 빠지게 합니다. 상대가 난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거나, 더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거나, 나보다 더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감사는 사라지고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살리에리는 당시 최고의 음악가였습니다. 모차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모차르트와 자신의 음악을 비교하면서 그의 인생은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은 밤잠을 설쳐가면서 온 힘을 다해 작곡해도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못하는데, 모차르트는 여자들과 어울려 놀 것 다 놀면서 그저 자투리 시간에 취미로 삼아 작곡하는 것 같은데도 그의 음악은 불후의 명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절규합니다.
“왜 저에게는 천재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만 주시고, 모차르트와 같이 천재적인 작곡 능력은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는 결국 비교 의식과 열등감이 그의 인생을 파국으로 치닫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