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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방을 보는 시선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1월 27일(화) 16:23 가+가-
‘먹방’은 한 번 보면 흥미로울 수 있다. 수북하게 보이는 음식, 과장된 리액션, 일상의 규칙을 벗어난 식사 장면은 잠시 시선을 붙잡는다. 대부분은 거기까지다. 몇 번의 클릭 뒤에 잊히고, 다음 자극으로 대체된다. 그런데도 어떤 먹는 방송 유튜버들은 단단한 팬층을 형성한다. 단순히 “많이 먹어서”도 “자극적이어서”도 아닌데 말이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바뀐다.
왜 우리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게 되는가. 음식은 본래 고귀한 것이었다. 그것은 생명의 희생 위에 놓인 결과였고, 노동의 시간과 자연의 순환을 함축한 대상이었다. 공동체를 묶는 의례의 중심에 있었다. 함께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섭취가 아니라 관계의 확인이었고, 식사는 일상의 종교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행위는 오랫동안 금기였다. 음식의 순수함은 도덕적 규율이자 삶의 태도였다. 그러나 현대의 음식 콘텐츠, 특히 먹방은 이 질서를 해체한다. 음식은 더는 관계의 매개가 아니라 자극의 재료가 되고,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오브제가 된다. 과도한 양, 파괴적인 섭취 방식, 놀이처럼 다뤄지는 식재료는 음식의 고귀함과 순수를 의도적으로 벗겨낸다. 이는 단순한 무례함이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의미 구조의 이동을 보여준다. 음식은 더는 ‘귀한 것’이 아니라 ‘넘쳐나는 것’이며, 존중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이런 콘텐츠가 왜 반복 소비를 넘어 팬심으로까지 이어질까. 그 이유는 음식이 아니라 반복되는 인간의 모습에 있다. 한두 번의 먹방은 사건이지만, 지속적인 시청은 관계다. 인간은 반복되는 얼굴과 목소리, 예측 가능한 리듬 앞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뇌는 자주 만나는 타인을 ‘내 편’으로 분류하고, 그 사람이 보여주는 일상적 행위를 신뢰 가능한 세계로 인식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준 사회적 관계’라 부르지만, 체감적으로는 아주 현실적인 친밀감이다.
이때 음식은 배경으로 물러난다. 팬들은 더는 무엇을 먹는지보다 어떻게 먹는지를 본다. 음식 앞에서의 태도, 욕망을 다루는 방식, 절제하거나 혹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선택,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인격적 서사로 읽힌다. 시청자는 그 태도에 동의하거나 반발하면서도, 결국은 그 세계관을 인식하게 된다. 팬이 된다는 것은 곧 그 세계관을 일정 부분 수용한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음식의 고귀함을 저버리는 듯한 방식조차 팬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불편함 속에서 솔직함을 본다. 위선 없이 욕망을 드러내는 태도, 사회적 규범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은 오히려 해방감을 준다. 이때 팬심은 윤리적 판단을 넘어 정서적 선택이 된다. “나는 저 방식을 옹호한다”기보다 “저 방식이 내 결핍을 건드린다”라는 쪽에 가깝다.
결국, 팬층이 형성되는 지점은 흥미가 아니라 습관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는 식사 장면은 작은 의식이 된다.
불안정한 삶 속에서 변하지 않는 장면은 정서적 닻처럼 작동한다. 음식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항상 거기에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먹는 방식은 곧 삶을 대하는 방식처럼 읽히고, 시청자는 그 방식과 조용히 합의한다.
그래서 먹방 열성 팬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이 관계를 맺는 방식, 의미를 소비하는 태도, 그리고 고귀함을 다루는 감각의 변화에 대한 증거다. 음식이 신성함을 잃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여전히 의미를 갈망한다. 다만 그 의미의 위치가 음식에서 사람으로, 의례에서 반복으로, 공동체에서 개인적 관계로 이동했을 뿐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감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다. 먹방을 보며 느끼는 거부감, 음식이 함부로 다뤄진다는 감정은 우리가 아직 음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낡은 도덕이 아니라, 관계를 중시하는 감각의 흔적이다.
흥미는 소비되고 사라지지만, 팬심은 관계를 남긴다. 그리고 그 관계가 무엇 위에 세워졌는지를 묻는 일은, 우리가 어떤 세계를 허용하고 어떤 태도를 선택하며 살아가는지를 묻는 일과 다르지 않다. 먹방은 사소한 콘텐츠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앞에서 형성되는 팬심은, 이 시대 인간의 정서와 가치관을 비추는 꽤 정직한 거울이다. 경제의 성장과 물질의 풍요가 가져오는 시대에 프로그램의 다양성은 인정된다. 하지만 음식이 오락의 범주로 오용되는 것은 경계의 지점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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