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6년 01월 14일(수) 16:23 가+가-

2차대전 후 패전국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 산을 하나 두고 두 고아원이 이웃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연합군과 결연되어 있어 시설 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도 취할 수 있었지만 다른 고아원은 비바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뿐 아니라 분유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시설과 음식이 좋은 쪽의 어린이 사망률이 건너편 고아원보다 60%나 높았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 이유를 자세하게 분석한 결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세 아이를 잃고 실성한 40대의 어머니가 어느 날 시설이 나쁜 쪽의 고아원을 찾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어머니가 그곳에 수용된 고아들을 모두 자기 자식으로 착각하고 번갈아 안아주고 얼러주길 수년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의문이 풀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아이들은 환경이나 영양 이외에 어머니 품에서 배어 나오는 따뜻한 김, 곧 사랑의 손길이 아이들의 성격이나 건강이나 생명에 불가결의 요인이라는 학설이 체계화되고, 지금도 구미 고아원에서는 사랑의 손길을 주는 대모가 필수 불가결의 조건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대 로마 공화정 시절의 개선식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허락되는 개선식은 에트루리아의 관습에 따라 얼굴을 붉게 칠하고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며 시내를 가로지르는 카퍼레이드를 거행하는데, 이런 대접을 한 몸에 받게 되면 당사자는 말 그대로 신으로 숭배받는 듯한 벅찬 감동에 젖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개선식의 마차에는 ‘인간 중에서 가장 비천하다고 할 수 있는 노예 한 명이 장군과 같이 탑승하고, 이 노예는 개선식 동안 끊임없이’ 메멘토 모리죽음을 잊지 말라라는 말을 속삭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해당 개선장군에게 너무 우쭐대지 말라고 하는 경고 장치였습니다.
즉 아무리 대접받는다 해도 그는 신이 아닌 인간일 뿐임을 잊지 말고 공손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자세히 계속해서 경각시키는 것입니다. 그냥 그런 말을 하는 정도라면 다른 사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터인데 굳이 노예를 사용하는 까닭은 비천한 존재인 노예를 같이 태움으로써 고귀한 신만이 탑승하는 신의 전차보다 그 급을 낮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아무리 영광스러운 인간이라도 신에는 미칠 수 없다는 에트루리아 특유의 종교적 장치였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개선장군에게 수여되는 관에는 이런 경고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Memento mori 그대는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Memento te hominem esse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Respice post te, hominem te esse memento뒤를 돌아보라, 지금은 여기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원래는 오만해지지 말고 신들을 공경하라는, 1등이라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는 문장이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으로서 전성기를 누려봤자 그 위에는 반드시 신이 있기에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
이 때문에 초기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을 즐겨라)과 일맥상통하는 문장으로 받아들였지만, 이후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현세에서의 쾌락, 부귀, 명예 등은 모두 부질없는 것(Vanitas)이라는 등 기독교적 허무주의를 상징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초에는 죽은 가족, 친구, 연인의 모습을 메멘토 모리라며 사진을 찍어두는 게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는 사진을 찍는데 가격이 매우 비싸서 차마 살아 생전에는 찍지를 못하고, 사람이 죽고 나서 그를 기억하기 위해서 찍는 것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이 어느 날 세계적인 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인류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죄악이 무엇이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리이스의 현자는 “늙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현자는 “사람이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르시아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암흑의 세상에 광명을 줄 만한 선을 한 가지도 못 하고 임종을 맞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