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인간과 세계를 잇는 공간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01월 06일(화) 16:25 가+가-

집. 우리는 흔히 그것을 단순히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공간으로 여긴다. 하지만 집은 그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인간이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 기억과 상상을 담는 그릇이 바로 집이다. 집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의 다락방, 창밖의 빗방울, 부엌에서 흘러나오던 음식 냄새가 겹쳐진다. 이런 감각들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풍경을 이루는 한 조각이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을 인간 내면의 이미지와 상상을 담는 장소로 보았다. 그는 특히 다락, 서재, 안락한 방 등 각 공간이 인간의 꿈과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강조했다.
어린 시절의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상상의 원형으로 작용하며 우리의 감정을 형성한다. 집 안에서의 경험은 곧 인간의 내면적 세계를 만들어가는 초석이다.
아늑한 방은 보호와 안전의 감각을 주고, 창밖을 바라보며 상상에 잠기는 순간은 사고와 꿈의 씨앗이 된다. 집은 그렇게 인간의 정신과 상상을 길러내는 은밀한 교사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집을 바라본다. 그는 인간을 단순한 존재가 아닌, 세계 속에 거주하는 존재(Dasein)로 규정하며, 집을 존재론적 경험의 장으로 이해했다. 인간이 집을 짓고 머무르는 것은 단순한 생존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세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방식이다. 집 안에서 우리는 자신과 세계, 그리고 시간과 관계를 맺는다.
벽과 천장, 창과 문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집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존재의 연속성과 관계 맺음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성경에서 가장 축복을 크게 받은 사람을 들라면 아브라함이다. 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있다. 소중한 집과 마을을 떠나라는 것이다. 그의 순종과 믿음을 보고자 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고 떠났다. 이것이 그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게 된 출발점이다.
바슐라르와 하이데거의 시선은 서로를 보완한다. 하나는 인간 내면과 상상, 기억을 통해 집의 의미를 탐구하고, 다른 하나는 인간 존재와 세계와의 관계를 통해 집의 본질을 드러낸다. 우리는 집에서 보호받고 꿈꾸며, 동시에 세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집은 안전의 공간이면서 상상의 공간이고, 인간 존재의 근거이면서 세계와의 접점인 셈이다.
현대 사회에서 집의 의미는 또 다른 층위를 지닌다. 아파트, 오피스텔, 셰어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가 등장하면서,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 삶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우리는 집을 꾸미고, 배치하며, 가구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 과정에서 집은 인간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상상과 기억을 담는 그릇으로써 계속해서 재창조된다.
‘문을 열면/ 먼저 나를 알아보는 공기가 있다/ 오랜 친구처럼/ 아무 말 없이 품어 주는/ 낡은 의자 하나/ 햇빛 고이는 창틀/ 설거지 소리 사이로/ 사라졌던 하루가 다시 자란다/ 집은/ 돌아오는 곳이 아니라 / 내가 다시/ 시작되는 자리다’ 최창일 시 <집> 전문.
집은 단순히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상상하며, 존재를 경험하는 공간이다. 별들도 집이 있다. 시간이 되면 반짝이는 그들의 집으로 떠난다. 개미도 벌들도 집이 있다. 곤충과 동물도 본능으로 집을 만들고 그 집에 머문다. 새들은 태어나며 집을 만드는 본능을 배운다. 영장인 인간에게 안식은 집으로부터다. 집 안에서 우리는 보호받고, 꿈꾸며, 세계와 연결된다.
바슐라르가 말한 상상과 기억, 하이데거가 강조한 존재와 세계와의 관계가 공존하는 공간, 그것이 바로 집이다. 오늘도 우리는 집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세계 속에 서 있는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집은 인간과 세계,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을 잇는 끊임없는 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