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을 가는 “분”이 던지는 교훈! ‘통합의 접착제’
이창용 논설위원
작성 : 2025년 12월 29일(월) 16:30 가+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과의 삶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게 차이가 나는 격차사회, 소득도 정치도 양극화 사회 속에 갇혀, 운신하기조차도 힘든 현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감독원 업무보고 때에 지적한 ‘이너서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TF(테스크포스) 회의를 금감원이 29일 개최됐다.
금융감독원이 금융 관련 기관들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착수하기 위한 일환인데, 이는 그동안 금융권에서 20여 년 이상 은행장과 지주사회장을 회전문처럼 돌아가면서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은 사람들을 대통령이 지적한 것으로서, 부자들의 무디어진 윤리와 도덕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행태에 대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적절한 지적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가 해를 거듭할수록 제멋대로인 것은 주식으로 수천억이나 조 단위 이상을 벌어들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폐지를 주어서 한 끼 한 끼 근근이 연명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문제해결을 위한 절박함이 없이 강 건너 불 보듯 한 지도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구조를 개선할 의지 없이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어떻게 나아갈 수가 있겠는가?
마침 인류 사랑의 대명사인 예수, “가시밭길”을 피하지 않고 그 길을 가면서 모순을 하나하나 고쳐 나갔던 가난한 자들의 친구이셨던 예수, 성탄의 계절을 보내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불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한 좋은 방안은 없을 까고 깊이 생각을 해보는 일이 새 출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도대체 예수는 이 세상에 왜 내려오셨을까?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천한장소인 말구유란 말인가? 많은 신학자들이 정리해 놓은 예수탄생의 의미를 재조명해 보자.
첫째,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탄생의 마지막 카드로 쓰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는 멀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멸망하도록 내어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하시도록 성서는 증언한다. 둘째, 죄를 심판하시고 마귀를 멸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낸다. 성서 곳곳에서는 반드시 죄악을 심판하실 것임을 증언하고 있다. 셋째,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하여 성자의 신성이 인성과 완전하게 연합되었다고 증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부요함을 우리의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원리이다.
예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이들은 베들레헴의 가난한 목동들이었다. 천사들은 ‘하늘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외쳤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던 이들이 먼저 기쁜 소식을 들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예수의 탄생을 ‘임마누엘’, 곧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선언으로 전한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인간과 함께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왔고, 이 땅에서 그 삶의 끝은 십자가였다. 세상의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고 모순을 타파하면서 걸어온 예수의 생애는 인류사랑 자체였다.
그렇다면 성탄의 계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살펴서 공유하고 실천하자. 한국은 ‘기적’을 만들어낸 나라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6·25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각국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최단기간에 고난을 딛고 일어선 나라, 그래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극찬하지 않는가? 그를 뒷받침이나 하듯이 산업과 문화(K-컬처), 스포츠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OECD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과 초저출산,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진행해 온 초 고령화, 3포 세대로 둔갑한 혈기왕성해야 할 청년들의 박탈감, 고착화되어 가는 소득과 정치의 양극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사회저변에 짙게 깔려있다는 현실이 우울하게 한다. 이를 극복해 가는 일은 우리들의 최우선 과제이다. 그렇게 하려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목표와 방향을 같이하여 일사불란하게 앞으로 정진해야 한다. 이번인사에 야당 3선의 전 국회의원을 발탁한 일은 탕평인사로 평가할만하며 국정을 이끌어 가는데 여야가 따로 없음을 보여주는 지혜로운 처사다.
우리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이 주는 물질적 이익의 시대를 넘어 도덕적 인정·자아실현·노동의 기쁨이라는 미래의 동력, 국론이 분열되지 않도록 하는 통합의 접착제를 우리 사회 안에 세워야 한다. 그것은 가족과 공동체가 다시 삶의 기반이 되고, 노동이 존엄과 참여의 경험이 되며, 성과보다 기여가 존중받는 사회적 질서를 복원하는 일이 될 것이다.
1929년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모 기자에게 전한 “동방의 등불”은 저절로 켜지지 않는다. 세계가 길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진다.
예수탄생의 계절에 그분의 삶을 일부라도 실천하는 의지와 결단은 깜짝 놀랄만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