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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亂)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12월 09일(화) 16:30 가+가-
내란(內亂)은 외세의 침략도 아니다. 군부의 총구도 아니다. 단 한 사람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광장의 등불이 흔들릴 때, 그 진동의 시작점은 대개 권력이 민중을 비추는 거울을 내려놓는 순간이 된다. 국민을 향할 선정(善政)이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제도를 비틀기 시작할 때, 민주주의의 기반은 조용히 으깨지기 시작한다.
역사 속 여러 장면이 이를 증명한다. 공적 권한이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원칙이 흔들리면, 법과 절차는 종잇장처럼 찢기고, 정권은 제 뜻을 관철하기 위해 권력의 도구를 동원한다. 그 과정은 겉으로는 정상 운영의 모습을 띠지만, 속에서는 민주적 질서를 좀먹는 균열이 빠르게 퍼진다. 대체로 이런 균열은 이념의 충돌이 아니라 사익의 집착에서 비롯된다. 국민을 바라보지 않는 권력자의 욕망이 국가 전체를 흔드는 ‘내란의 기류’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내란이 총성보다 위험하다는 데 있다. 폭력 사건은 누구나 경계하지만, 제도와 명분이 포장한 위선과 허위는 초기에 알아채기 어렵다. 효율을 명분으로 삼고, 경쟁을 핑계로 삼으며,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말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권력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차단하는 조치가 반복된다. 그렇게 신뢰가 불타오르듯 무너질 때, 공동체는 어느새 양분되고 민중의 등은 거북 등이 된다. 싸움은 외부의 적을 겨냥하지 않고 국민 서로를 향한다.
역설적으로 가장 먼저 깨어나는 이들도 국민이다. 살아있는 국민의 양심이 내란을 지켜보지 않는다. 탱크 앞으로 막아선 시민들이 외친 목소리는 권력자가 외면한 진실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촛불을 들었던 젊은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탱크 앞으로 향했던 시민들, 정책의 사소한 왜곡에도 발언을 멈추지 않은 이들. 그들의 행동은 거대한 산처럼 모여 결국 권력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정치적 혼란이 있을 때마다 이 나라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은 특정 진영이 아니라 ‘민중’이라는 이름의 공동체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질문을 되풀이하게 된다. “누가 나라를 흔들었는가?” 답은 분명하다. 총을 든 병사가 아니라, 민중을 등지고 자신의 욕망을 앞세운 권력자였다. 그리고 그 욕망은 혼자가 아니라, 그에게 이익을 얻는 주변 세력과 왜곡된 제도적 장치들에 의해 확대되었다.
여론을 통제하려 하고, 비판을 불편한 소음으로 치부하며, 반대 의견을 “국익을 해치는 목소리”로 몰아붙이는 오래된 방식이 되풀이되었다. 그 순간부터 국가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란의 반복을 막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결론은 하나다. 권력은 스스로 감시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유일한 방식은 국민의 끊임없는 참여와 감시다.
언론의 비판적 기능, 시민사회의 역할, 의회의 견제, 사법의 독립 모두 국민의 관심이 있을 때 살아 움직인다. 정치적 진영 대립이 깊어질수록 ‘내 편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성숙함이 더욱 필요하다. 어떤 진영이든 잘못이 드러날 때 비판해야 하고, 정권보다 국가의 원칙을 우선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특별한 순간에만 작동하지 않는다. 광장이 밝을 때만 유지되는 체제가 아니다. 일상적 감시와 토론, 지역의 작은 결정에 관한 관심, 비상식에 대한 지적이 쌓이면 공동체는 자신을 스스로 지켜낼 힘을 갖게 된다. 국가가 언제 흔들리는가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절차의 파괴와 작은 방심이 누적될 때 위험은 싹튼다.
그러므로 시민의 일상적 참여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패다.
오늘 우리가 다시 묻는 이유는 명확하다. “누가 나라를 어지럽히는가?” 갈등 자체가 아니다. 다양한 의견은 민주주의의 숨결이다. 그러나 갈등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삼고, 국민을 적대의 언어로 나누며, 국가 시스템을 사익의 방패로 사용하는 순간, 그곳에 바로 나라를 흔드는 그림자가 있다.
우리는 그 그림자가 다시 커지지 않도록 거울을 들어야 한다. 그 거울은 권력자를 비추는 동시에,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주체임을 확인하는 장치다. 광장에서 불빛을 들었던 사람들, 일상에서 목소리를 낸 시민들 덕분에 이 나라는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욕망은 공동체를 흔들 수 있다. 그 욕망을 멈추는 힘 또한 한 사람이 아닌 ‘민중 전체’에서 나온다. 국민이 거울을 드는 한, 이 나라는 다시 중심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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