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이 주는 행복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5년 11월 26일(수) 16:21 가+가-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병이 난 나이 많은 한 여자가 눈병을 고쳐주면 크게 사례하겠다고 약속하고 의사를 불렀습니다. 의사는 항상 그 여자의 집에 가서 그녀의 눈에 약을 넣기 위해 눈을 감게 하고서 그사이에 그 집에 있는 값비싼 물건들을 하나씩 둘씩 몰래 집어 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녀의 눈병이 거의 나을 무렵, 그녀의 집에는 변변한 가구라곤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자기가 탐이 나는 물건을 모두 훔쳐 갈 수 있을 때까지 눈병 치료를 질질 끌어온 것입니다. 마침내 여자의 눈이 다 나았으므로 의사는 약속한 대로 사례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약속한 사례를 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재판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에 불려 나온 그녀는 “어찌하여 약속한 사례를 치르지 않느냐?”는 재판장의 심문에 태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확실히 내 눈이 잘 보이도록 고쳐주면 상당한 사례를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의사의 치료를 받고 나서는 내 눈이 전보다 더 나쁜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의사는 물론 재판장도 매우 놀라 그 곡절을 다시 물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저 의사의 치료를 받기 전에는 내 집에 있는 값비싼 물건들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 눈은 좋아진 것이 아니라 전보다 더욱 나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 악덕 의사의 절도 사실이 법정에서 밝혀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마침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 타울러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타울러가 하루는 거지를 만나서 “친구여, 오늘도 안녕하십시오” 하고 말하니 “나는 하루도 안녕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행복하기를…” 하자 거지는 “난 불행해 본 적이 없어 창조주께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타울러가 놀라서 “그것이 무슨 뜻이오?” 하고 묻자 거지는 “날이 좋으면 감사하고, 비가 와도 감사하고, 먹을 것이 넉넉하면 감사하고, 배고파도 창조주께 감사했습니다. 창조주의 뜻이 나의 뜻이요, 창조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나를 기쁘게 합니다. 그러니 제게 무슨 불행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타울러는 더 놀라서 “대체 당신은 누구시오?”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왕이오” 하고 그 거지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나라는 어디에 있소?” 하고 타울러가 물으니 거지는 “내 마음속에 있소”라고 대답했습니다.
랍비 시므온은 “평생 나는 한 번도 사슴이 무화과를 말리는 것을 보지 못했고, 사자가 물건을 운반하고 여우가 장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염려 없이 먹고 삽니다… 만일 나를 섬기기 위해 창조된 그들이 걱정 없이 먹고 산다면 창조주를 섬기기 위해 창조된 나는 얼마나 더 걱정 없이 먹이시겠는가? 그러나 나는 염려함으로 내게 있는 것까지 부패시켰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창조주께 맡기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소원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지 가운데 가장 강력한 의지가 행복에 대한 의지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면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근본적인 상태는 만족입니다. 만족이 있으면 행복하고 불만이 있으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어떤 외적인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 내는 감정입니다. 만족이란 마음에 흡족한 상태로서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하게 느끼는 감정입니다.
서양 속담에 “행복은 만족에 있다”(Happiness consists in contentment.)라는 말은 참말입니다. 행복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행복감을 떠나서 행복이 달리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성이 높고 좋은 가정을 갖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면서도 불행한 사람, 또 그와 반대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별로 갖지 못하면서도 사실상 행복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