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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가 필요한 사회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11월 25일(화) 16:47 가+가-
선한 단어를 고르라면 ‘선지자’다. 성경에서, 고대 문명에서, 종교와 철학의 서사 속에서 이 단어는 언제나 특별한 울림을 갖고 있었다. 선지자는 신의 뜻을 전하는 자였고, 사람들에게 다가올 미래를 말해주는 자였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단지 ‘예언자’라는 사전적 정의에 갇히지 않았다.
진정한 선지자는 단순히 미래를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 시대를 직시하고, 사람들이 외면한 진실을 꿰뚫으며, 현재의 모순을 고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언제나 고독하고, 때로는 조롱받는다. 심지어는 제거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대부분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먼저 본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절망하고, 먼저 분노하고, 먼저 꿈꾼다. 그들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지만, 정작 자신은 그 길의 끝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전례 없는 혼란과 분열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특정 인물, 전씨와 같은 인물들이 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선지자”라 칭하고, 광장과 미디어에서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하나님이 까불면 죽는다”라는 발언은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그가 과연 선지자인가, 아니면 선동가인가? 성경에서 선지자는 단순히 예언을 말하는 자가 아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사회의 불의에 맞서던 거룩한 외침의 도구다.
에레미야는 권력자들에게 핍박받으면서도 눈물로 예언을 전한 인물이다. 엘리야는 발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꾸짖고 외롭게 산에 머물며 신의 뜻을 구현했다. 요한은 “회개하라!” 외치며 정치 권력자에게 목이 잘릴 것을 알고도 침묵하지 않았다. 이들은 공통으로 자기를 낮추고, 신의 공의와 사랑 사이에서 떨며, 자기희생의 삶을 살았다. 오늘날 전씨는 자신이 이 시대의 선지자라고 스스로 추켜세운다. 그의 언어는 종종 모욕적이고, 신의 이름을 경박하게 사용한다. 그가 ‘하나님이 까불면 죽는다’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수사의 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인식 부족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애굽기 20:7)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이름은 인간의 분노와 정치적 목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말씀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는 한 사람을 비판하는 시간은 벗어나야 한다. 광장에 소리를 지르는 자들에 우리는 스스로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참된 선지자의 음성도 성찰하는 시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싸움터로 변해가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저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린도전서 14:33) 우리 안의 분열과 분노, 탐욕을 내려놓고, 다시 진실과 사랑의 예언자들을 세워야 할 때다. 에레미야가 그랬고, 소크라테스가 그랬으며, 현대의 수많은 ‘작은 선지자’들도 그러했다.
오늘날, 우리는 선지자가 사라진 시대를 사는 듯하다. 정치도, 종교도, 학문도 진실이 아닌 계산을 먼저 하러 들고, 진실보다 권력을 따른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선지자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종교적이어야 할 필요도, 신비로울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일상 속에서 울리는 작은 목소리일 수 있다. 한 줄의 시, 한 장의 그림, 한 사람의 외침, 그 안에도 선지자의 정신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고, 때로는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내는 순간, 우리도 이 어두운 시대의 ‘작은 선지자’가 될 수 있다.
선지자는 분열의 골짜기를 지나간다. 갈등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사람이 선한 선지자다. 승자독식 같은 현실에 타협과 조정을 잘 하는 사람이 선지자다. 우리는 방향을 중시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듣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광장의 시련을 통하여 훈련되었다. 광장의 험난한 시간이 부정인 줄만 알았지만 우리는 참는 것에 듣는 것에 알게 모르게 훈련이 되었다. 통합의 길은 민주주의 길이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미래다. 우리는 공동의 선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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