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시로 들여다보기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11월 18일(화) 15:42 가+가-

‘열하일기’를 두고 흔히들 조선 후기 최고의 기행문이라고 말한다. ‘열하일기’를 단순한 사행 록이나 여행기술로만 읽는다면, 그 책이 지닌 심연을 놓치고 만다. ‘열하일기’는 외양은 산문이지만 속살은 시(詩)다. 언어는 기록의 틀을 갖추었으나, 그 속에서 시적 울림과 철학적 사유가 동시에 진동한다.
연암 박지원은 시인이기도 했다. 그의 진정한 시적 힘은 오히려 산문에서 드러난다. 언어의 리듬, 풍자와 은유, 세계를 꿰뚫는 통찰은 시가 지닌 본령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요컨대 ‘열하일기’는 산문으로 쓰인 시요, 기록을 넘어선 철학이다.
서양 고대의 철학자들은 시와 철학의 거리를 의식하면서도, 결국 서로를 필요로 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했지만 정작 그의 대화편은 신화와 은유로 가득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다”라고 단언했다. 역사는 사건을 적지만, 시는 인간과 세계의 보편적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연암의 ‘열하일기’ 역시 이 점에서 시적이다. 청나라 열하에서 본 장면들을 단순한 사실의 나열로 남기지 않았다. 그 장면들은 세계의 의미를 묻고, 인간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며,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사유의 무대가 되었다.
시와 철학은 서로 다른 언어로 세계를 응시한다. 시는 울림으로, 철학은 개념으로 말한다. ‘열하일기’는 이 두 언어가 교차하는 드문 고전이다. 연암은 자연을 그리면서 단순히 아름답다고 감탄하지 않았다. “산은 병풍 같고, 물은 끝이 없다”라는 묘사는 그저 경관을 그린 말이 아니다. 그것은 무한한 세계와 그 앞에서의 인간의 유한성을 직감한 기록이다.
칸트가 말한 숭고의 체험이 바로 이런 순간일 것이다. 압도적인 자연은 인간을 작아지게 만들지만 동시에 이성의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열하일기’ 속 연암의 자연 묘사는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숭고를 매개로 한 철학적 성찰이다. 그에게 산과 강은 조선 사회의 협소함을 드러내는 대비 물이었고, 풍경은 곧 비판의 언어였다.
‘열하일기’의 백미는 풍경만이 아니다. 열하의 장터에서 만난 상인과 장인, 농부와 관리의 모습은 연암의 붓끝에서 살아난다. 묘사는 단순한 사실 기록이 아니라, 풍자와 해학으로 빛난다. 권세가의 허위, 문인의 공허한 학문 풍토를 꼬집는 대목에서는 웃음 뒤에 깊은 자조와 분노가 숨어 있다. 시의 본령은 노래이지만, 동시에 비판이다. 시인은 삶의 균열을 드러내는 자다. 연암의 문장은 바로 그 비판 정신을 계승했다. 헤겔이 말했듯 예술은 시대정신의 현현이다.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의 시대정신을, 그것도 가장 어두운 그림자까지 드러낸 기록이었다.
공자는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라고 했고, 주자는 시를 성정의 발현으로 보았다. 동아시아에서 시는 단순한 미적 장르가 아니라, 도덕과 철학을 담는 언어였다.
연암의 ‘열하일기’는 바로 이 전통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의 글은 사사로운 감흥이 아니라, 인간의 성정과 사회의 문제를 동시에 드러내는 언어였다. 그러나 그는 한시라는 전통적 형식에 머무르지 않았다. 산문 속에 시의 정신을 불어넣었고, 기록의 언어에 철학의 날을 세웠다. 그 순간 시와 산문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산문인지 시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때로는 여행 기록처럼 담백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서정시처럼 울림이 일어난다. 길 위에서 만난 장면들이 시가 되고, 그 장면을 성찰하는 그의 시선이 철학이 된다.
연암은 산문으로 시를 쓰고, 시로 철학을 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예술과 사유는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 시와 철학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듯하면서도 결국 하나의 지평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열하의 길 위에 바람이 묻는다/먼 산의 먹빛과 말굽의 흙냄새를/연암의 붓끝은/세상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처럼/가볍고도 날카로워/웃음 속 진실을 적고/풍경 속 사람을 싣는다/그 길을 따라 걷는 우리는/지금도 한 장의 일기를 넘긴다’ 최창일 시 <열하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