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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와 철학이 필요한 사회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11월 11일(화) 15:51 가+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손끝에서 검색되는 지식은 산처럼 쌓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와 고립이 자란다. 논리와 분석은 정교해졌지만, 삶은 더욱 설명되지 않는다. 이때 떠오르는 질문 하나가 있다. “언어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 질문 앞에서 가장 먼저 소환되는 두 가지 언어가 있다. 바로 시(詩)와 철학(哲學)이다. 하나는 감각과 이미지로 세계를 붙잡고, 하나는 개념과 사유로 세계를 설명한다. 서로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같은 근원에서 나온 두 흐름이다.
철학은 세계를 향해 질문한다. “왜 존재하는가? 무엇이 진리인가?” 반면 시는 질문보다 먼저 느낌을 말한다. “나는 이렇게 본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 철학은 논증하고 설명하지만, 시는 보여주고 울리게 한다. 하지만 두 언어를 뿌리까지 내려가 보면, 그들이 바라보는 자리는 다르지 않다. 모두 ‘존재’, 그리고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는가’라는 하나의 질문 앞에 서 있다. 철학은 개념으로 다가가고, 시는 감각으로 접근할 뿐이다.
어쩌면 철학은 시가 남긴 여백을 논리로 메우는 작업이고, 시는 철학이 미처 닿지 못한 틈을 감각으로 드러내는 작업일지 모른다.
철학이 ‘정의’를 세운다면, 시는 ‘느낌’을 지킨다. 철학은 “왜?”라고 묻고, 시는 “이렇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둘 다 진실을 향한다는 점에서, 결국 “사유하는 시”와 “노래하는 철학”은 같은 세계를 다른 길로 걷는 동행자다.
오늘날 우리는 시와 철학을 너무 쉽게 분리한다. 하지만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처음 언어를 빚어냈던 순간을 떠올리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철학의 출발은 시였다.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철학을 시의 운율로 썼다. 그는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노래하듯 말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산문이 아니라 단문과 비유로 자기 사유를 남겼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말은 논리라기보다 시적 직관에 가깝다. 플라톤마저 《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가장 시적인 문장으로 세계를 설명했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경(詩經)》은 단순한 노래 모음이 아니라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담은 철학적 기록이었다. 공자는 “시를 읽지 않으면 사람과 말할 수 없다”라고 했고, 노자의 《도덕경》은 철학서인데 동시에 5천 자의 응축된 시였다. 도(道)를 개념으로 말하지 않고, 물의 흐름, 바람의 숨결 같은 이미지로 표현했다.
이때 시와 철학은 둘이 아니었다. 세계와 인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언어, 그것이 곧 시였고,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가 도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선언하며 세계를 분해 가능한 사유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진리는 감각이 아니라 이성이 판단해야 한다는 믿음이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 결과 철학은 점차 논리학, 과학, 분석의 영역으로 나아갔다. 한편 시는 ‘감성의 언어’, 즉 논리로 증명할 수 없는 주관의 세계로 물러났다.
이때부터 시와 철학은 서로를 바라보며 거리감을 느꼈다. 철학은 시를 “모호한 감정의 언어”라고 평가했고, 시는 철학을 “생명 없는 개념의 묘지”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런 분리는 오히려 인간의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빼앗아버렸다. 느낌 없는 개념, 사유 없는 감각은 모두 세계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깨달은 이들이 있었다. 니체, 하이데거, 릴케, 발터 벤야민 같은 사유자들이다. 그들은 철학의 언어를 시의 자리로 되돌려놓으려고 했다. 니체는 말한다. “철학자는 결국 시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이데거는 선언한다. “시는 존재가 언어로 스스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철학이 언어를 개념으로 가두면, 존재는 침묵하고 만다.
반대로 시는 언어를 열어, 존재가 말하게 만든다. 시와 철학은 인류의 역사에 깊이 관여하였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근원적 질문에 다다르게 했다.
공자와 노자는 각각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이지만 그들이 인간에 미치는 통찰에서 시와 철학의 여정임을 강조했다. 무릇 현실에 공자가 노자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시와 철학이 필요한 사회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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